작은 사람 큰 이야기 - 지하철 무허가 상인 조경환씨를 만나

“이런 일을 기아바이라고 해”
건대입구역에서 만난 조경환(남 37) 씨는 자신의 직업을 가리키는 은어를 가르쳐 주었다. 조씨는 지하철 칸칸을 돌아다니며 일이천원 짜리 상품을 파는 일을 한다. 조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2년 전쯤부터였다. 조씨는 개인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서 ‘기아바이’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던 조씨가 처음 지하철에서 일을 할 때는 부끄러운 마음에 물건을 들고 그냥 나온 적도 많았다.

“언젠가 한번은 친척을 만나서 얼굴을 가리고 도망갔던 일도 생각나네”라며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어린이 용품을 파는 오늘의 조씨는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을 한 인상 좋은 아저씨였다. “한 3년 전에 유행했던 상품인데, 지금도 꽤 팔려”라며 조씨는 능숙한 솜씨로 장난감을 다뤄 보였다.

기아바이의 하루 매상은 5∼6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과 상품에 따라서 매상이 다른데, 부지런하고 잘하는 사람의 경우 하루에 10만원 정도의 매상을 올린다. “그래도 너무 힘든 일이라 일주일에 4일하면 정말 많이 하는 거야. 그리고 딱지를 떼이기라도 하면 그날 하루는 공친거지”라고 조씨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더구나 IMF 이후 기아바이를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늘어서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어. 회사원, 막일꾼, 전업주부 등등. 다들 먹고살려고 하는 거니까 텃새 부릴 수 있나. 좀 더 일찍 나올 뿐이지”라며 심정을 말했다.

기아바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이들 사이에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한 열차 안에는 한 명만 탄다거나, 먼저 온 사람이 먼저 열차를 타고, 타고 내리는 역도 정해져 있다. 조씨를 만난 건대입구역도 기아바이들 사이에 정해진 역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조씨 이외에 두 세 명의 기아바이들을 더 볼 수 있었다. “각 구역마다 정해진 역이 다 달라. 처음에는 그래서 다른 기아바이들에게 많이 혼났지. 구역을 옮길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이런 정보를 얻는 거야”라며 조씨는 이들 사이의 규칙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은 상품을 대부분 공장에서 직접 사오거나, 사무실을 두고 대량으로 물건을 사서 나누어 판다. 조씨는 후자 쪽으로 사무실을 직접 두고 있었다. 사무실을 두고 다른 기아바이들에게 물건을 주면서 자신도 직접 일을 나가는 것이다.

“이 일은 밑바닥 바로 직전의 일이야. 이 밑이 바로 앵벌이고. 누군 이런 일 좋아서 하겠어. 벗어나야지.” 조씨는 돈이 모이면 다시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조경환 씨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지하철 칸을 향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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