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국제관계학과 중국농활체험기

우리의 계획은 연길에 있는 석정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5박6일간 농사일을 돕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마을에 도착했지만 10여년만에 내린 폭우로 당초 계획했던 밭농사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놀러온 것이 목적은 아닌 이상, 마을 청소며 도로 보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또 저녁에는 분반활동시간을 마련했다. 아동반 시간에 함께한 까무잡잡한 피부에 맑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은 정말 순수해 보였다. 함께 노래도 부르고 놀이도 하며 동심의 세계로 돌아갔다. 조선족들의 대학 진학률은 중국 평균 대학 진학률의 4배나 된다고 한다. 얼마 전 북경대학의 수석 입학생도 조선족 여학생이 아닌가? 이 아이들은 어쩌면 장차 중국의 미래라는 생각에 이들이 자라서 우리를 그리고 한국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아 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해보았다.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면 어르신들과의 즐거운 시간은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가로등도 없어 밖은 칠흑같이 어둡고 게다가 정전까지 되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어른들이 오시질 않아 잠시 걱정이 되었다. 시간 전달이 잘못 된 탓이다. 뒤늦게 한 분 두 분 오실 때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불이 없다는 말에 양초묶음까지 사오셔서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었다. 마을 어른 분들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얘기도 나누면서 마치 먼 친척뻘인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애틋한 정을 나누었다. 타지에서 보낸 따뜻한 밤이었다.

다음날도 연신 비가 왔다. 홍수라도 나는 게 아닌지 걱정을 하고 있는데 주민 한 사람에게 동네에 큰 일이 생겼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강물이 폭우로 인해 불어 마을의 제방이 무너질 것 같다는 것이다. 둑이 단순한 흙제방이었기 때문에 강물이 조금만 더 불어나도 제방이 무너지면서 바로 앞에 있는 십 여채의 집이 침수될 상황이었다. 빨리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지만 제방 제작은 쉽지가 않았다. 황급히 바위들을 강물에 빠뜨리고 나무 구조물을 제방 옆 강 쪽에 고정시켰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급한 불은 껐지만 계속되는 호우로 강물이 더욱 불어날 것이라는 말에 제방을 강화하기로 했다. 오후부터 시작된 작업은 해가 다 지고 나서야 끝났다. 어느 정도 제방도 안정을 찾아가니 비로소 주위를 둘러 볼 여유가 있었다.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마을 분들밖에 없었는데 나중에는 그다지 친분이 없던 강 건너 마을사람들까지 우리의 모습을 보고 도우러 왔다는 것이다. 비록 모두들 피곤에 지치고 허기에 지친 채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마지막 날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을 마무리하는 의미의 마을 잔칫날이었다. 열심히 음식을 준비한 후 잔치장소인 석정소학교까지 폭우로 끊어진 둑길을 휘청거리며 걸어갔다. 힘이 들었지만 곱게 머리단장하고 명절에나 입는 한복을 차려입은 할머니들의 반가운 얼굴을 본 우리들의 얼굴엔 금새 미소가 번졌다. “남조선 음식은 난생 처음 먹어봅니다” 하면서 샐러드와 김밥을 신기해 하는 어르신들의 한 마디에 지친 몸과 마음이 다 풀리는 듯 했다. 학교 교실에서 술과 음식을 대접한 후에 운동장에서 마을분들과 우리의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다. 자칫했으면 썰렁하거나 지루한 감이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틈틈이 준비를 한 우리 학생들의 코믹차력과 노래자랑에 그 분들은 많이 흥겨워 하셨다. 고국의 소식과 가락을 그리워하던 동포들도 차츰 우리의 노래와 춤에 어울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어깨를 들썩이고 박수를 치면서 우리는 내내 콧잔등이 시큰해져 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민과 우리 모두 서로 손을 맞잡고 ‘고향의 봄’을 불렀다. 꼬옥 쥔 손에서 한 민족의 정과 희열을 느낄 수 있었고 가장 친해지고 좋을 때 헤어져야 하는 야속한 이별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렇게 우리는 농활 일정을 마무리 했다.

우리가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농촌 봉사활동이야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농사일을 돕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또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중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을 만나 함께 하면서 우리는 준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왔다. 세계는 넓고 할 일도 많고 그리고 해야만 하는 것들도 많다. 서로의 평범한 일상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국제인이 되기 위한 첫 걸음이 아니었을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배우고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정말 특별한 여행이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경수진, 이정인, 정가영
<국제관계학과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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