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근대세계로 들어서면서 인간사회의 공간구조를 바꾼 여러 가지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는 속도성이다. 그리고 후기근대(Post Modern)로 이행하면서 스피드는 이제 이동의 내용과 방향성을 오히려 앞질러 그 자체로 가장 중요한 가치,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포뮬라 엥(Formula 1)에 출전하는 카레이서들의 짜릿한 질주에 관객들이 흥분하는 것이나 한국영화 ‘비트’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정우성이 한 밤중 내리닫는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눈을 감은 채 두 팔을 벌려 부닥쳐 오는 대기를 껴안는 장면들은 마치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속삭이듯 목적지나 방향성에 관계없이 엄청나게 빠르게 달리는, 또는 나르는 것 그 자체가 생의 의미이자 순간성에 의한 모든 가치의 대체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이제 우리의 삶은 벡터 개념이 갖던 비중을 덜어내 버리고 “얼마나 더 빠르게“ 움직이고 따라잡고 적응하는가에 의해서 승부가 나는 세상을 구성한다. 그러다 보니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따질 여유가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왜, 무엇을 위해서” 가는 것인지는 정말 따분하고 귀찮은 질문이 되었다. 빠른 것, 그것은 강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며 좋은 것이 되었다. 빠른 것은 그 자체로 세상을 지배한다.

그런 세상에서는 다른 한편에 땅바닥에 온몸을 붙이고 엎드려 주변의 정황에 눈치만을 살피는, 즉 스스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으며 기생하는 “복지안동(伏地不動)” 행태를 이른바 난세를 겪는 자의 처세술 중 한 항목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비참한 꼴이지만 말이다.

이런 스피드 지배의 세상에서 대학의 존재 의의는 다시 한 번 대두된다. 대학은 현실을 면밀히 직시하고 그에 대해 학습하되 ‘현재’와의 일정한 거리유지를 통해 반성적 긴장상태를 확보하는 곳이다.

모두가 신자유주의 경제를 선이라고 외쳐 양적으로 계산되는 소득을 인류사회 지상의 목표로 삼고 있을 때, 또는 모두가 곧 통일이 될 듯 안면을 바꾸고 갑자기 북한노래 부르는 것을 유행으로 삼고 있을 때, 그리고 모두가 방향을 묻지 않은 채 기술과 스피드 경쟁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을 때, 대학의 역할, 지식의 역할은 그에 대한 날카로운 감시와 이성의 냉철함과 깊은 반성적 사고와 혁신적 실험정신을 통해 건설적이고 적극적인 모색과 대안의 기운을 풀어 내어놓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대학의 역할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자신들의 터전인 대학 자체에 대한 대학인들의 자세와 시각에 있어서랴! 해서 나는 다시 물어본다. 서울시립대학교 발전의 방향성, 존재의 정당성, 추구하는 특성과 역할은 무엇인가? 과연 도도히 흐르고 있는 급류 속에서 우리 대학교는 스스로의 구심점, 상징성, 아이덴티티,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어떻게 잡고, 그것에 대하여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구성원과 리더쉽,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현재와 미래에 해야 할 역할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비전(Vision)은 무엇인가?

우리 대학교는 몇년 전 이 문제에 대하여 전 학내 구성원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노력하여 하나의 답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 다음이 어떠한지 안팎에서 준엄하게 묻는 진실의 시간을 우리는 피할 수 없으며, 그 때가 코앞에 다가왔다.

벡터(Vector)를 잃으면 급류속에서 배는 떠내려간다. 헤엄칠 수 있는 자들이 먼저 뛰어내려 배에서 멀어져간다. 이 때도 배를 수리하지 않으면, 그리고 정신차려 나아갈 방향을 잡지 않으면 상당히, 상당히 곤란하다. 때의 징조를 읽지 못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일 뿐 아니라 주위에 불행을 초래하는 자이다. 이제 다시 경종을 울릴 때가 왔다. 나 스스로에게 먼저 경종을 울린다.

송도영<도시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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