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어 교육은 1945년의 광복 이후에 깊은 수렁에 빠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헤어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국어 교육은 한마디로 참담합니다. 국어 교육의 첫째 목표는 말과 글을 배워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남의 말이나 글을 듣거나 읽어서 옳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데 있습니다. 예사로운 대화는 말할 것도 없고 정밀한 과학적 표현과 섬세한 예술적 표현까지 스스로 할 수 있거나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이 학문과 예술의 발전을 비롯하여 모든 사회적 발전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국어 교육은 이런 목표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길을 걸어 왔습니다. 과거 50여년 동안 한국의 어린이, 젊은이들이 받아온 어설픈 국어 교육의 결과가 너무나 심각하여 이 이상 더 내버려 둘 수 없는 형편에 이르렀습니다. 한국 국민의 국어 능력이 극도로 저하된 것입니다.

1945년의 광복은 한국의 모든 것을 새롭게 건설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장은 모든 것이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학교 교육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분야들보다는 안정된 바탕 위에서 새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까닭은 모든 교육의 기초가 되는 국어 교육의 기틀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세기 말엽부터 애국적 선각자들에 의해서 꾸준히 계속되어 온 國語 國文의 연구가 맞춤법 제정(1933)과 표준어 사정(1936)으로 열매를 맺은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우리 말과 글의 標準化가 마련된 것입니다. 이 일을 주도했던 조선어학회의 회원들은 광복과 더불어 맞춤법과 표준어의 보급에 힘썼습니다.

광복 직후의 국어 교육은 각급 학교에서 똑같이 맞춤법과 표준어에 관한 학습만으로도 벅찼습니다. 그런데 민족의 독립을 되찾고 국어를 마음대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게 된 기쁨에 들뜬 분위기 속에서 醇化論(purism)이 대두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장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開化期 이래 순화론자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광복 직후 그들의 주된 주장인 한글 專用이 학교 교육에서 강력하게 추진되었습니다. 1945년 11월에 美軍政廳 學務局 안에 설치된 교육심의회는 12월 8일에 “초등, 중등 교육에서는 원칙적으로 한글을 쓰고 한자는 안 쓰기로 함”을 결의하여 곧 실행에 옮겼고 1948년 12월에는 大韓民國 國會에서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 통과됨으로써 그 근거를 더욱 튼튼히 하였습니다. 이 법률은 “대한민국의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동안 필요한 때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사실상 구속력이 없는 것이었으나 국어 교과서에는 그 원칙이 적용된 것입니다.

저 위에서 한국의 국어 교육이 1945년 이후에 깊은 수렁에 빠졌다고 했는데 이 수렁은 주로 이 한글전용이 판 것입니다. 광복 이후의 국어 교육을 주도한 한글전용론자들은 한글만이 우리 민족의 문자라고 하는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새 나라의 젊은 세대들을 위한 母國語 교육의 理念과 方向에 관한 폭넓은 연구와 설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국민의 교육을 이렇게 하나의 운동에 이용했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교육이란 기본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그 사회의 전통을 傳授하고 그 사회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그 사회의 전통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광복 뒤의 국어 교육은 그 첫걸음부터 아주 엇나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문교부가 언어의 사회 형성의 기능, 인간 형성의 기능, 문화 전달의 기능 등 언어의 세 가지 기능을 제시하고 있는 ‘국어과 교과과정’을 마련한 것은 1955년 8월이었습니다. 이것은 그 뒤 몇 차례 개편을 보았으나 기본적으로는 큰 변동이 없었습니다. 이 세 기능을 바탕으로 해서 국어과의 일반 목표가 설정되고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글짓기)에 관한 구체적인 지도 내용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뒤늦게나마 국어 교육에 관한 기본적인 검토가 이루어진 것은 다행한 일이었지만, 이 모처럼의 文書가 空文에 그치고 만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국어 교육의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리하여 어름어름하는 사이에 半世紀가 흘렀고 그 동안에 ‘한글 世代’가 量産된 것입니다. 문제는 이 한글 세대의 국어 능력이 극도로 저하된 데 있습니다. 이들이 원만한 언어.문자 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여 우리 나라의 문화와 학문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사회 활동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시내의 어느 洞會에 배속된 방위병을 만나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는 그 동회에서 청소만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동회에서 사무를 보려면 漢字를 읽고 쓰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에게는 그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자기만이 겪는 수모가 아니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최근에 와서 이런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국문과에서 1997년에 학생들의 漢字 실력을 측정한 결과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시험은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韓國, 美國, 政府, 問題, 大會, 國語, 存在, 自由’ 같은 二音節 漢字語 500을 들고 그 讀音을 달라는 것이었는데, 한 반 30∼40명 중에서 30 이내의 誤讀을 범한 학생은 3∼4명뿐이요 대부분의 학생은 150 내지 250을 잘못 읽었고 400 이상을 잘못 읽은 학생도 3∼4명씩 있었습니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漢字 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 않는다면 도리어 이상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서 저는 한글만으로 글을 쓰는 일, 소설을 쓰고 신문을 내는 일을 반대하지 않음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한글로 쓴 [춘향전]과 [독립신문]을 저는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런데 한글로만 글을 쓸 수 있다고 해서 漢字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입니다. 한국어에는 漢字語가 많습니다. 한국어 어휘의 태반이 漢字語임은 한국어 사전을 몇 장만 뒤적여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특히 文化와 學問에 관한 어휘는 거의가 漢字語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이 많은 漢字語를 빨리 또 정확하게 배우는 길은 漢字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漢字는 200자나 300자만 익히면 2,000자나 3,000자를 쉽게 익힐 수 있습니다. 3,000자만 알면 몇 萬의 漢字語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실은 한글로만 쓴 글을 읽기가 더 어렵습니다. 저는 요즈음 신문이나 잡지, 길거리에 나붙은 표어들을 보고 그 한글 표기 뒤에 숨어 있는 漢字를 알아내느라 머뭇거리는 적이 가끔 있습니다. 조금 위에서 제가 “모처럼의 文書가 空文에 그치고 만 것”이라고 썼는데 ‘공문’이라고 한글로 썼다면 어떻게들 보았을까요. 十中八九는 ‘公文’쯤으로 생각하고 지나치지 않았을까 합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漢字 교육은 한국어 학습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漢字를 배우지 않고는 漢字語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漢字語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국어를 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어 공부는 정도가 높아질수록 漢字語의 比重이 커집니다. 특히 學問의 世界에서는 漢字語에 대한 깊은 지식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자연과학이나 인문사회과학이나 日本 學界가 漢字로 만들어 놓은 術語(譯語)들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이 관례가 되다시피 한 것처럼, 漢字 지식의 위축으로 한국어가 學術語로서의 獨自性을 잃고 있음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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