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피에르 부르디외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당대 최고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지난달 25일 내한했다. 90년대 후반 세계화 담론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부르디외는 경제논리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문화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국가정책과 노동파업에 개입하는 등 현실비판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미 「예술의 규칙: 문장학의 기원과 구조」,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상징폭력과 문화재생산」 등의 저서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는 지난달 26일 교보빌딩에서의 강연회를 통해 세계화에 대해 “주권국가에서 지배되던 시장은 강력한 힘에 포섭됐던 것이며, 종교에서의 평화로운 세상 이면에는 단일한 세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뜻이 숨겨져 있다”고 말하여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서는 프랑스에 이민해 온 알제리인들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즉 이들은 전화번호부에 자신들의 이름 올리기를 거부했는데, 자신들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기 위함이었으며 이는 결국 신자유주의가 낳는 ‘악의 순환’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다.

부르디외의 사회불평등 재생산에 있어서의 자본에 대한 연구는 최근 저술한 「경제 사회구조」를 보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경제자본에 주목하던 기존의 사회학 틀을 벗어나 경제지수만으로 설명 불가능한 현실을 설명하고자 아비투스(습득과정을 통해 생성된 체제로써, 사회적 장내에서 하나의 계급을 다른 계급과 구별짓는 구실을 함), 장, 자본 등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지는 생산부분에 있어서는 가옥, 건축 등을 예로 들어 보조금·대출 등의 형태를 통해 국가가 소비자를 제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주택시장과 같은 사회적 시장은 사실 국가시장인 것이다.

부르디외의 이러한 신자유주의 비판 식의 논리들은 최근 그를 둘러싼 논쟁거리인 ‘이론을 하는 부르디외인가’, ‘정치참여를 하는 부르디외인가’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90년대 이후 ‘실천에 치중한 원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이론과 실
천, 과학과 행동의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나의 사회참여 이유는 ‘학자는 인류의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의 명예가 높아지고 자산이 많아짐에 따라 나의 사회적 의무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이론만을 추구하는 경향에 대한 거부는 그에게 절충주의 선호라는 또다른 기호를 가져다줬고,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던 부르디외가 독일 미술관에서 ‘사진기와 같은 일상품이 예술품이 될 수 있는가’의 앙케이트를 실시해 본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70이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르디외는 이십대의 열정으로 세계화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한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가장 무책임한 형태’라는 그의 비판에 무조건 찬성하기에 앞서 세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탐구하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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