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문화상 - 시부문 당선작

언제였더라 마을 신작로에 포도(鋪道)가 덮이고 채 마르지 않은 가장자리에 순이와 내 이름 새겨두었던 때가. 아침 저녁으로 다니는 집채만한 버스 타고 읍내란 곳에 가고 싶다. 순이와 얘기하던 (나의 살던 고향은 ……)

치마산 대나무처럼 쑥쑥 자라고 싶었다. 큰형처럼 키도 크고 삼촌처럼 쌀가마니도 불끈불끈 들고 싶어 또래 애들과 곧잘 하던 나이 먹기 놀이. 매일 스무 살도 서른 살도 되었지만 순이네 담 안을 들여다보려면 언제나 깨금발을 해야 했다. 소꿉놀이할 때마다 내짝이 되어주던 순이가 꽃잎 반찬을 만들며 아기인형을 갖고 싶어하던 (복숭아꽃 살구꽃 ……)

순이 떠나고 누구와도 소꿉놀이를 하지 않았다. 나이 먹기 놀이에도 흥미를 잃었다. 토끼풀로 엮은 목걸이는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향기 잃어가고 순이와 나의 추억이 암술과 수술로 만나 치마산 가득 꽃을 피워대던 (울긋불긋 꽃 대궐……)

순이는 돌아오지 않고 나는 이〔齒〕를 앓게 되었다. 할머니는 흔들리는 이를 실로 묶어 문고리에 걸어두셨다. 옛날이야기 들으며 눈감고 있으면 탁, 문 열리며 뽀얀 이 떨어지고 지붕 위로 던져버린 순이에 대한 기억을 물고 날아가던 새떼. 잊기 위해서 텁텁한 솜을 물은 채 이 악물어야 한다고, 한 톨의 눈물도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울먹이며 다짐하던 (그 속에서 놀던 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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