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문화상 - 소설부문 당선작

1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온통 물천지였다. 시멘트 바닥에 스미지 못한 물, 흙 속에 스미고 스미다 넘쳐서 고인 물. 저―높은 산자락에서부터 내려온 뻘건 황토물. 물. 물. 물.... 눈동자가 무거웠다. 손등을 가져다대니 물이 묻어난다. 원래부터 그랬지만 요즘 들어 유난히 눈물이 많아졌다. TV속에서 흘러나오는 지나치게 큰 박수 소리를 들으면서, 길을 가다가 덩그라니 놓여진 한 짝 뿐인 운동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동자가 무거워짐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지금... 장마비에 후둑 후둑 떨어지는 하얀 아카시아 꽃잎을 보면서, 별로 울 일도 아닌데, 중얼거리면서 나는 또 울고 있다. 눈물이 많아지면서 내게 생긴 또 하나의 변화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또각 또각 나를 적셔온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펜 뚜껑을 열자마자 적어 넣을 이름 하나쯤은 필요한 일이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써도 공허한 눈빛을 보내지 않을 사람, 편지 봉투를 우체통에 넣고 돌아서다가 다시금 입구를 더듬어보게 만드는 사람. 내게 그런 사람이 있었던가…. 잠시 생각을 멈추고 나를 되돌아본다.

2
이틀. 그 분이 내게, 내 기억을 미치는 시간 동안, ‘아버지’였던 시간은 단 이틀뿐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을 하신 건 점쟁이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열흘이 멀다하고 집을 나가는 ‘떠돌이 병’환자였고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독사에 물려 돌아가신 다음날에도 거리로 춤을 추러 나갈 만큼 지독한 끼의 소유자였다. 예고도 없이 집을 나가서 할머니를 몇 번이나 자리에 눕게 하신 아버지. 온 몸을 비집고 올라오는 끼 때문에 상복을 입고 울면서 춤을 추신 어머니. 점쟁이는, 그 둘을 고칠 수 있는 건 두 사람의 결혼뿐이라고 했다. 둘이 결혼을 해서 두 아이를 낳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했다. 결국 두 집안의 성화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혼식을 올렸고 일년 뒤에 태어난 계집아이가 바로 나다. 그러나 어머니는 목숨을 잃을 정도로 난산을 한데다 선천적으로 몸이 허약해서 둘째 아이를 낳지 못했다. 점쟁이의 말이 맞은 건지 아니면 모성애 때문인지 어머니의 끼는 사그라들었지만 아버지의 떠돌이 병은 여전했다. 이틀에 한 번, 그러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그렇게 아버지의 신발이 뜰팡에 놓이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나는 성장을 했고, 내가 말을 익히고 주변에 대한 지각이 생길 즈음, 아버지는 아예 집에 발길을 끊으셨다. 일 년에 한 번, 어머니 생신 날에는 수신인에만 주소가 씌어진 하얀 편지 봉투가 배달되었다. 그 안에는 나뭇잎이 들어있기도 했고 물고기 비늘이 들어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빈 봉투였다.
- 느그 아부지가 보내온 거여.
어머니는 언제나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내게 그렇게 말씀하시곤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 잊지는 않고 있는가 봐유. 끼니는 챙겨먹구 댕기는 거여유?
물에 젖은 목소리. 어머니는 봉투를 쥐고서 깜깜한 벽에다 대고 간절하게 묻고 계셨다. 그러면 나는 뾰로퉁해졌다. 사랑하는 당신도 아니고 지숙이 엄마도 아니고 남남처럼 ‘정귀숙 귀하’라고 적어 보내는 편지봉투 한 장에 그것도 빈 편지 봉투 한 장에 저렇게 무너져버리는 어머니가 바보 같아 보였다.
내가 스무 살 되던 해, 어머니의 생신날에는 아무 것도 배달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주일을 넘게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결국 몸져 누우셨다.
- 뭔 일이 나도 단단히 난기여... 사흘만에 어머니께서 말문을 여셨다. 나는 느닷없이 공허해졌다. 가슴속에 밀려들던 싸늘함. 그것은 허기도 아니었고, 소설가 S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서걱거리던 가슴속의 뒤척임과도 다른 느낌이었다. 느닷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 핏줄이라는 게 그런 거여... 어머니는.. 내 등을 어루만져 주셨다. 따뜻한 손바닥. 손금에서부터 깊이 느껴지는 그 따스함은 내게 처음으로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서 간절한 감정을 갖게 했다.

골수염이군요.

의사는 아버지 정강이에 주사바늘을 푹 꽂았다. 노란 코처럼 올라오는 고름을 보며, 의사는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나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계룡산 자락을 오르다가 내리 80m를 굴러 떨어지신 아버지는, 고작 그 80m의 길이 만큼만, 찢겨진 살덩이만큼만 우리를 기억하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다리를 잘라내야 할지도 몰라요. 골수염은, 뼈 속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예요. 다행히 남편 분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서 수술만 하면 금방 완쾌가 될 겁니다. 나는 차라리, 잘라버렸으면 했다. 다리가 없어지면 떠돌이 병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 사램이 그래 맴을 독허게 쓰는 게 아니여.
어머니는 집을 팔고 논을 파셨다. 병원 근처의 버려진 집들 중에서 두 채를 골라 수리를 하시고 기다려 보자 하셨다.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어머니는 그저 기다려 보자고만 하셨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지 않으셨다. 집 근처에 있는 작은 호수에 앉아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셨다. 사고 이후, 아버지는 잘 길들여진 아이 같았다. 호수에서.. 낚시를 하신 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신 것도 아니고.. 그저 잔잔한 물결 위에 자신의 그림자를 비추는 일이, 그의 하루 일과였다. 기억의 망각 속에서 어쩌면 그는 자기가 ‘떠돌이병’환자였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아버지라고불러 볼 수도 없었고, 그 동안 담아두었던 어리광을 부려볼 수도 없었다. 그저 가만히... 그의 곁에 앉아서 그림자를 보태는 일밖에는……. 가끔씩 아버지는 긴 침묵을 깨고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아가씨.. 슬픔이라는 것은 아침마다 이 호수에 머무는 안개와 같은 것이예요. 멀리서 보면 한없이 막막해 보이지만 다가서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니예요. 영원할 것 같지만 햇살이 조금만 비춰도 부서져 버리는 것이예요......
- 아가씨.. 생각하는 걸 미루면 안돼요. 생각한다는 것은, 내 안의 뜰을 가꾸는 거예요. 그 뜰에는, 그 뜰의 중앙에는 샘이 있는데, 그걸 퍼내는 것이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걸 게을리 하면 아가씨 뜰이 더러워지고 메말라요. 그러면.... 아가씨도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아가씨라고만 하지 않았다면, 나를 아가씨가 아니라 지숙아,로 불러주었다면 조금은 행복해졌을까?
- 아가씨, 어린왕자 읽어봤어요? 생텍쥐베리는 경비행기 사고로 죽었대요. 그런데 그 사람이 그렇게 죽기 얼마 전에 자기 죽음을 예감했다고 해요. 자기 친구한테 그 예감을 이야기하면서 서럽게 울었대요. 죽음이 임박해 온다는 걸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요?

아버지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계룡산에 있을 때 이미 아버지는 죽음을 예감했던 것 같다. 기억을 상실한 것은.. 자신이, 떠돌이병에 걸린 자신이, 죽기 전에 남겨진 이들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머니는.. 편안해 보였고 분주해지셨다. 집 앞에 있는 감나무에 감이 열리면 폭삭폭삭하게 혀 속에서 녹아 내리는 홍시만 골라서 깨끗한 행주로 닦아 아버지 집 마루에 올려두기도 하셨고, 철이 바뀔 때마다 새 이불을 해서 안방에 밀어 넣어주기도 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안개가 자욱한 새벽이었다.

- 지숙이 엄마! 지숙아!
나는 너무도 아득해서, 꿈 속이라고만 생각했다. 안개 속에서 희미하기만 한 아버지의 실루엣. 아버지는 내 이름을 부르고 계셨다. 그날 밤,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노를 젓는 배를 타고 호수 속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그 새벽의 침묵을 깨지는 못했다. 파리한 새벽의 향기.
안개 자욱한 물방울 속에서 나는, 살아있음조차 꿈결같이 느껴졌다.
- 여그가 어디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섬, 그래.. 섬이었다. 그 작은 호수 속에 내가 보지 못했던 섬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바다를 건너 멀리멀리 가버렸던 걸까? 배 안에는 식기들과 쌀 주머니와 담요까지...

며칠 밤을 보내는데 충분한 것들이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섬을 오래 오래 걸었다. 아버지 옆에는 어머니가 있었고 어머니 옆에는 내가 있었다. 잠시 쉬었다 가자는 말도 나오지 않았고 왜 걷고 있냐는 물음도 없었다.
아무 생각도 없었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거품처럼 부서지고 싶었다. 하얀 포말이 되어 출렁이고 싶었다. 섬에서의 일몰은 내 존재가치의 망각을 불러 일으켰다. 나란히 이어진 세 줄의 발자국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그 생경스러움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하얗게 각인되어 있다. 아버지는 나를 아가씨가 아니라 지숙아라고 불러주었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그 때는 왜 그리 어색하기만 했는지…….
나는 어려서부터 해온 일, 익숙한 일들만 했다. 많이 먹어보지 않은 음식은 손도 대지 못했고 새로운 사람과 익숙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 지숙아, 아버지가 그렇게 세상을 떠돌면서 살아야했던 건, 남겨진 이로서의 죄책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밑에 동생이 하나 있었다. 살아 있다면 지금쯤 마흔쯤 된 중년신사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동석이었다. 그 녀석의 이름은 동석이였어.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동석이는 그 때 대학에 갓 입학한 아이였어. 그 시골에서, 서울로 대학을 갔다는 것은 우리 모두를 부풀게 했다. 동석이가 입학하고 두어 달 쯤 뒤에 나를 찾아왔었다. 최류탄 냄새를 풍기면서 내 방 창문을 두드렸어.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에 집으로 하얀 상자 두 개가 배달되었다. 상자는 두 개였지만 세 목숨이었다. 그 날, 동석이가 내게 찾아왔던 날,그 녀석이 울면서 그러더구나.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그 여자가 자기 아이를 가졌는데, 거리에서... 자기가 보는 앞에서 군인에게 찔려서 죽었다고... 그 여자 친정이, 아니 그 여자는 고아였다. 자취하는 동생이 걱정되어 집에 다녀가다가....변을 당했던거야. 동석이는... 그렇게 내게 왔었다. 이 애비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할머니 몰래 돈 몇 푼을 쥐어주는 게 고작이었다. 동석이를 강에 뿌리고 나서.... 죽음이라는 것이 참 별게 아니구나, 생각을 했다. 세상을 그렇게 그날을 잊어갔고 친지들도, 그 아일 잊어갔다. 어르신들은 내게 역마살이 끼었다고 성화셨지만 나는 안주할 수가 없었다. 그냥 멈춰버리면 나마저도 그들을 잊게 될까봐……,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네 어머니는.. 가여운 여자야. 몸 안에 예술의 피를 삭이고 산다는 것은 나처럼 안주하지 못하고 떠돌아야 하는 삶보다도 더 괴로운 일이다. 그 날 말이다. 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 네 어머니가 거리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춤을 추던 날. 그 날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젊은 여자가 무슨 한이 저렇게 많을까, 가여워져서 곁에 있던 사람들이 다 울었었다. 그 뒤로도.. 그러니까 내게 시집오기 전날까지도... 나는 네 어머니의 춤을 보면서 생각했다. 무엇인가를 잊고 싶어 저러는가 보다. 아니면.... 나처럼, 잊지 않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아버지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원망 속에 보내던 시간들이, 한 순간에 사그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사그라짐은 이내 연민과 사랑으로 물들었다.
- 지숙아, 삶이 너를 놓기 전까지는 네가 먼저 놓지 마라. 그리고 네 어머니.. 잘 해드리고. 나중에, 나중에 말이다. 네가 너만한 아이를 가졌을 때에도 가끔씩은 나를 기억해주겠니?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기에…….
다음 날 새벽. 다음 날 새벽이었다. 잠을 자다가 스치는 안개의 창백함이 너무도 좋아서 얼핏 눈을 떴었나보다.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하나는 모래사장에서 들렸고 하나는 물소리 속에서 은밀하게 들려왔다. 아버지가, 물 속으로 들어가고 계셨다. 안개 속에 가리워진 그의 뒷모습. 그 앞에서……, 어머니는 춤을 추셨다. 어머니의 몸이 저렇게 예뻤던가.. 세월에 말라버린 어머니의 두 다리가, 두 팔이 안개 속에서, 그 창백함 속에서 선명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과거의 언젠가 ‘그 날’도 저렇게 춤을 추셨으리라. 어머니의 얼굴은 눈물 투성이었다. 충혈된 눈 속에서 절대의 침묵이 묻어났다.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침묵. 모래사장을 휘휘 돌아나는 어머니의 두툼한 발바닥. 아버지는 이미 목까지 물에 잠기셨다. 미소짓는 아버지의 얼굴. 아버지는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 아버지!

나는 그를 처음으로 그렇게 불렀다. 그러면.. 돌아봐 주지 않을까, 아니 멈춰서주지 않을까. 나의 기대는, 메아리가 되어 잔잔한 물결 위에서 한 줌의 물매암처럼 멀어질 뿐이었다. 아득해지는 기억의 세포들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사지에 힘이 풀려옴이 느껴졌다. 눈을 부릅떴지만 바닥이 폭신해지는 느낌만이 발바닥을 메워버렸다.
내가 깨어난 곳은 병원이었다. 이미 아버지의 장례식까지 다 치러진 후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처럼 내 곁에 계셨다. 이따금 텅 빈 시선이 내게 응시되었다가 이내 사라져버렸다.
- 땅에 모셨다. 원혼이 되어서까지 떠돌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청주 선산에.. 한 번 가볼 테냐? 터가 좋다드라.
한 방울씩 떨어져내리는 링겔 속으로 그 호수가 보였고 사라져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왜 그랬냐고, 묻고 싶었다. 어째서... 아버지를 붙잡지 않았느냐고.. 그 때마다 머릿속에는 어머니 잘 해드려라는 아버지의 목소리만 되뇌어졌다. 퇴원 후 나는 어머니의 곁을 떠나서 서울로 올라갔다. 살아가다 보면 이따금, 자신의 삶이 낯설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가던 길을 멈추고 자기를 추슬러야 한다. 내게는 그 작업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글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소설가 S는 평범한 여자였다. 내가 그녀를, 그녀의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는 삶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소설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과 연결되어있었다. 그녀는 소설을 쓰는 것이 끝없는 삶의 되돌아보기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깊고 굵은 슬픔이 느껴지면서도 피가 붉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를 만나서 물었다. 왜였을까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닌, 그녀를 붙잡고……. 그녀는 말했다.
- 때로는, 때로는 말이예요. 그냥 지켜보는 것이, 아픔을 온신경으로 느끼면서도 그냥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해요. 두 분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세요.

3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온통 꽃천지였다. 빗물에 젖은 하얀 아카시아 꽃잎 속에서 젖은 향기가 풋풋하게 콧속에 스며들었다. 언젠가, 이와 비슷한 냄새를 맡아본 것 같다. 아주 아득히 먼 옛날. 어쩌면 전생의 길바닥 어딘가에서 이렇게 고운 냄새가 콧속으로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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