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학계의 관행을 비판한다
요즘 서울대 김윤식 교수의 ‘표절’과 대학(원) 사회 내부가 지닌 불합리한 구조에 대한 비판과 논란이 한창 진행중이다. 서울대 김윤식 교수의 저서 『한국 근대 소설사 연구』(을유문화사)가 일본의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민음사)의 일부를 표절했다는 사실이 『말』지 10월호에 게재되면서부터 그간 풍문으로만 떠돌던 김윤식 교수의 ‘표절’에 관한 논의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 논문 「김윤식 비평에 나타난 ‘현해탄 콤플렉스 비판」(이하 「현해탄 콤플렉스」)을 통하여 김윤식 교수의 ‘표절’을 밝힌 서울 시립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생 이명원씨가 자신이 경험했던 대학원 사회의 왜곡된 관행와 제도적 억압에 대해 고백하는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라는 제목의 ‘자퇴이유서’를 『말』지 11월호에 발표함으로써 대학 사회 내부가 지닌 문제점이 표면화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논란의 중심이 되는 「현해탄 콤플렉스」는 어떠한 성격의 논문인가?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 논문은 김윤식 비평에 나타난 비평적 사고의 추이를 ‘현해탄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씌어진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의 ‘현해탄 콤플렉스’는 김윤식 교수의 저서 『한국 근대 문예 비평사 연구』(1973)에 부록으로 실린 「임화연구」에서 최초로 언급된 용어로, “신문학사의 대상은 물론 조선의 근대문학이며 근대 정신을 내용으로 하고, 서구 문학을 형식으로 한 조선의 문학이다”(「신문학사의 방법」, 『문학의 논리』, 서음출판사)라는 임화의 이식문학론, 즉 한국 근대 문학이 명치-대정기 일본 문학의 이식이라는 임화의 주장을 규정하기 위해 김윤식 교수가 내세운 용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용어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서구 편향성인 ‘향보편 콤플렉스’와 대응되는 의미의 개념”이다.
간단히 살펴 보면, 논문 「현해탄 콤플렉스」는 임화가 ‘현해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처럼 김윤식 교수 또한 그가 그토록 비판했던 ‘현해탄 콤플렉스’에 그 자신이 빠져버리는 자가당착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음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근거로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을 기계적으로 표절하고 있다는 점, 김윤식 교수가 일본을 문학과 사상을 점검하는 시금석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 의식적인 차원에서는 일본적인 것과 대립하면서 무의식의 차원에서는 일본적인 것에의 탐닉을 드러내는 분열적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점으로 미루어볼 때 그의 논문 「현해탄 콤플렉스」는 김윤식 비평에 대한 하나의 학문적 연구이자 비판적 해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어떠했는가. 그는 ‘자퇴이유서’를 통해 이 논문이 자신의 “인생과 학문적 의욕을 순식간에 변화”시켰음을 고백하고 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지나치지 못하고 그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상황이 너무나도 뿌리깊은 구조적 모순과 연결되어 있는 탓에 그것을 해결하기가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이명원씨의 자퇴와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일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그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으로 우리는 김윤식 교수가 학문적 윤리에 어긋나는 표절을 스스로에게 용인했다는 데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와 별개로 논문 「현해탄 콤플렉스」가 문학 비평계의 태두(泰斗)이자 해당 학과 교수의 스승인 김윤식 교수의 표절 문제를 다루었다는 이유로 발표의 기회를 차단당한 데다가 해당 학과 교수에 의해 지속적으로 억압당한 데에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더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정당한 학문적 비판을 봉쇄하는 전근대적인 스승과 제자의 관계, 스승을 비판하지 못하는 학계의 관행, 제기된 문제에 대한 활발한 비판과 토론 대신 암묵적으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특정 집단의 패권주의가 근본적인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더욱 불행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대학에서 학문성의 틀로 쓰이고 있는 제도는 근대적인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적지 않게 봉건적으로 운용되고 있고, 제도의 억압으로부터 학생들의 창의와 줏대, 용기와 상상력을 건져줄 수 있는 선생들은 그들 스스로 제도를 넘어설 수 있는 내실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기지촌의 지식인」,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라는 김영민 교수의 말처럼, 한국 대학(원) 사회는 그 불합리함의 정도가 사회적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 대학 사회와 학문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비현실적인 몽상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허영수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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