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프리즘

동대문 평화시장의 좁다란 골목에서, 한 인간의 생명과 한 권의 법전을 휘감았던 그 느닷없는 불길을 목격한지 한 세대가 흘렀다. ‘시다’에게도 인권이 있음을 설파했던 순교자로서, 혹은 개발독재의 추악한 이면을 알린 고발자로서 청년 전태일의 죽음은 한강의 기적에 도취되었던 세대와 근대의 추악한 이면을 목도한 세대를 분명하게 갈라놓는다. 한국의 근대화는 전태일을 기점으로 근로가 아닌 노동, 희생이 아닌 인권, 독재가 아닌 민주라는 단어를 재발견한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이라는 개발독재의 허울이 한 노동자의 삶의 막장을 장식한 것은 근대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따져보면, 산업화의 역군들이었던 아버지의 세대도, 그 아버지를 부정하며 한국의 20세기에 대한 총체적 반성을 역설했던 아들의 세대도 모두 근대의 자식들인 셈이다.

그렇다면 전태일 이후 한 세대가 흐른 지금 우리는 근대성의 문제를 온전히 극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경제적인 지표는 분명히 전태일의 시대보다 상향되었을 것이고, 국가수반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정도로 한국의 인권수준을 세계가 인정하는 듯하니, 우리는 물질의 근대와 정신의 근대라고 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버린 셈인가. 근대성의 요체는 반성하는 사유다. 아버지 세대가 일군 산업화의 기적에 아들의 세대가 외디푸스의 칼날을 들이댔을 때, 이는 끝가는 데 없는 개발과 희생과 발전의 이데올로기에 성찰의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양자 모두가 ‘근대성의 경험’이라고 하는 동일범주에 포함되어 또 다른 반성의 대상으로 전이되고 있는 상황이다.

반성과 근대화의 도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저항과 노래>(동인, 2000)라 명명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월레 소잉카의 희곡집을 만날 수 있다. 소잉카는 조국 나이지리아의 정치적 운명과 자신의 문학적 삶을 접목시키면서 제 3세계의 국가들에게 ‘근대’란 무엇이었던가를 끊임없이 자문했던 작가다. 가령 그의 희곡집에 수록된 『길』이라는 작품에서 근대는 “소달구지가 유유히 지나가던 좁다란 길이 이제 차가 질주하는 길로 바뀌는” 양상으로 드러난다. 새마을 운동과 섬뜩한 유사성을 느끼게 하는 소잉카의 근대성 정의는, 넓혀진 길이 “죽음의 그림자로 가득 드리워진(『길』)” 상황임을 환기시킴으로써 결국 근대가 전통에 대한 전면적 부정도, 새로운 시대정신의 깔끔한 출발도 아닌 고난과 갈등의 시기였음을 밝히고 있다. 마치 전태일의 분신이 한국적 근대화에 대한 총체적 반성을 촉구했던 것처럼 소잉카는 그의 작품에서 죽음과 제의를 모티프를 동원해 아프리카의 근대성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을 촉구한다.

칠레의 작가 폴리 델라노는 화장실에 갇힌 주인공의 회고담을 통해 칠레 정치사의 격변기를 조목조목 요약하고 있다. 델라노의 <이 성스러운 장소>(책이있는 마을, 2000)에서는 숨막히는 젊은 시절에 대한 주인공의 단속적인 기억이 일종의 알레고리가 되어 칠레 근대화의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델라노의 불안하고 숨막히는 근대는 언뜻 아름다웠던 ‘젊은날의 초상’으로 드러나는 듯하나,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로 막을 내리는 결말에 이르러서는 그 비극적인 상황을 암시하고 만다. 그리고 이 작품이 쓰여진지 25년의 지난 현재도 칠레의 근대는 한국의 그것만큼이나 진행형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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