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환경에서 독학으로 공부해 유명 대학에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이야기. 공부와 막노동을 병행하면서 대학에 진학했다는 이야기. 대학 입학 즈음만 되면 간간히 이런 소식들이 들려온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한편에서 힘겹게 공부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꿈을 주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기사를 보기도 힘들뿐더러 있다 손 치더라도 ‘희망의 언어’로 다가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소위 ‘잘 사는 집’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간다는 사실은 뻔한 일이 되어버렸고,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교육의 양극화 현상은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기사에 서울대학교 신입생의 실질적 소득 수준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기사에 의하면, 2007학년도 서울대 신입생의 40%가량이 일반 국민의 소득 수준 상위 10% 가구에 포함된다고 한다. 반면 최하위 10% 소득 수준의 신입생은 전체 신입생 가운데 2.8%뿐이었다.

교육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기사는 교육이 희망으로써 작용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음을 알게 한다. 교육은 평등하려야 평등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위 ‘없는 집’에서 태어난 사람과 ‘있는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이미 출발점에서부터 차이가 나고, 교육의 과정에서 사교육, 교육환경 등으로 인해 그들의 실력 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으로 알아왔다. 가난한 이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있어 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길을 다져줄 희망이 되어왔다. 하지만 이제 집이 부유할수록, 양질의 사교육을 받을수록 유명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시대가 오면서 이러한 교육의 의미는 꽤나 무색해졌다. 부유한 집 아이는 집에서 과외를 받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아이는 학원에 다닌다고 치자. 이 경우 후자 쪽 아이는 이동하는 시간만큼 전자 쪽 아이 보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된다.

이렇듯 자본으로 인해 동등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교육이 희망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교육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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