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서서히 뿌리내리고 성장해 왔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제 그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발전하고 진보한다는 역사가 몇 걸음을 후퇴했다. 지금은 목 놓아 울어야 할 때이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탄핵안이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아 통과됐다. 우리나라만큼의 경제 규모를 갖춘 나라 중 이런 후진적 정치를 펼치는 국가가 있을까?

탄핵안의 핵심은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이다. 알다시피 기자회견 중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이 탄핵안 발의의 촉매가 됐다. “법이 허락하는 한,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을 지지하고 싶다”는 말이 탄핵감인가?

민주당은 “다른 나라의 탄핵 사유를 보라.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가장 중하다”고 말한다. 사실일까? 실제로 최근에 다른 나라에서 탄핵 논의가 있었던 대통령들을 보자.

인도네이사의 와히드 대통령과 필리핀의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비리 혐의로 2001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98년에는 파라과이 대통령이 정적 암살 때문에 탄핵 당했다. 대통령 탄핵안에 관한 외국의 사례는 대부분 비리 혐의로 자리를 떠난 케이스다.

아무리 공무원의 선거 중립 원칙을 높이 평가한다 해도, 노무현 대통령의 죄는 위에서 나열한 대통령이 저지른 범죄들에 비해 무게성이 확실히 떨어진다. 열린우리당에게 몇 억원을 몰래 지원한 것도 아니고 공무원을 선거 운동에 개입시킨 것도 아니다. 사실 공무원의 선거중립원칙은 선언적 조항일뿐 처벌규정도 없다.‘집 앞에서 침 뱉었다고 따귀 때린다’는 비유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뇌물수수로 구속된 국회의원을 석방시켰던 국회가 대통령은 선거법을 어겼다고 탄핵시킨다는 것 또한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과연 국민들 대다수가 반대하는 탄핵안을 국회에서 가결시키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은 쉽게 결정될 일이 아니다. 만약 탄핵안이 최소한의 설득력이라도 갖추고 있었다면, 차분히 국민을 설득하는 시늉이라도 냈을 것이다.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애시당초 불가능했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기에 이런 작태가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졌다.
국회의원만 국민의 대표가 아니다. 대통령도 국민 직접투표로 당선됐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국가 지도자에게 문제가 있다면 국민에게 한 번쯤 물어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온 국민이 한숨 짓던 순간에 박수치며 환호하던 193명의 ‘이국인’들을 잊지 말자. 총선에서 말 그대로 심판해야 한다. 4월에 당당히 물어보아야 한다. 대통령을 탄핵시켜서 기뻤냐고.

사실 국민에게는 4월 총선까지 기다릴 인내심도 바닥났다.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국민의 대표에게 민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줘야 한다.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12일, 국회앞에는 1만5천명의 시민이 모였다. 몰상식한 국회의원에게 현명한 국민이 진짜 민주주의를 가르쳐 줄 때다. 불의를 묵과하느니 차라리 무질서를 선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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