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주는 남자


故 기형도 형에게. 지난 7일은 형의 20주기였습니다.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으니 “우리는 완전히 그를 잊었다”라던 형의 시구처럼 ‘기형도’라는 이름도 잊힐 법도 하지요. 그렇지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여전히 형은 ‘청년’의 이름이니까요. 자, 이제 속절없는 이야기는 접어두고 『빈집』에 대해 몇 마디 해볼까 합니다.

이 시편에 등장하는 ‘밤’, ‘안개’ 등의 시어는 특유의 몽환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역시 기형도답다’라는 탄식을 이끌어냅니다. 그런데 기형도답다가 꼭 몽환적이기만 한 것일까요.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에서는 좀 더 나은 현실에 대한 기대가, 이어지는 시구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에서는 그러한 기대에 대한 스스로의 절망이 드러나고 있지요.

현실에 대한 기대감과 그 절망을 연이어 드러냄으로써 의식적으로 형 자신을 ‘빈집’에 가두려했는지도 모르지요. 그 ‘빈집’은 형의 생물학적 죽음과 맞닥뜨려져서 신비화되었지만요. 편지의 제목을 <가장 현실적이었던 어느 몽상가에게>로 삼아본 것은 그런 이유이지요. 자, 그럼 … 아, 이 땅의 현실이 궁금하시군요? 음, 세상 저 편에서는 부디 평안하시길!

박성필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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