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주는 남자


비록 근래의 일만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화두가 탈근대화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우리가 여전히 ‘근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또 동시에 근대성과 끊임없이 대결을 벌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위 시인은 그러한 시류에 전혀 휩쓸리지 않은 채 눈(眼)이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려는 그 수련의 과정을 통해 아름다운 보석들이 탄생하리라.

여기 비바람의 흩날림 속에서 미동하는 장미 한 송이가 있다. 시인은 그러한 광경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그는 꽃의 떨림, 그 순간순간으로 스며드는 시어들을 줍는다. 이를 통해 시인은 많은 ‘순간’들을 ‘천둥’, 빛과 소리의 그 미묘한 시간적 간극에 비유하는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인식은 많은 순간들을 분할, 아니 그러한 순간들을 지켜보는 시인의 미시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어쩌면 이 느린 시인은 ‘순간’을 긴 ‘영원’으로 빚어내는 시적 연금술을 수련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그러한 기법에 기대를 걸어 보는 것은 그러한 시적 연금술이야말로 이미지의 문제에 지나칠 만큼 경도된 우리 시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박성필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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