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주는 남자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상징을 두고 시인과 벌이는 한 판 대결일지 모른다. 오늘의 독서가 두려운 것은 그런 까닭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고 외쳤던 최영미가 아니던가! 그 ‘잔치’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도록 하자.

다만 그가 섰던 자리가 이념이 실종된 1990년대 초의 이 땅이었다는 점만 기억하자. 위 시에서 최영미는 이념의 종막 선언에 가까웠던 그 외침 이후의 삶을 반추한다. 그의 고백은 혹 이런 것이 아닐까. 나를 향해 날아들었던 ‘배반의 노래’라는 낙인도, 퇴락한 왕조와 같은 ‘녹슨 청동정원’도 모두 나의 것이었다는 고백.

망망히 흘러간 세월을 다시 돌이켜보는 그 쉽지 않은 고백, 하지만 이 고백은 자기변명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고백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때론 ‘이념’으로, 때론 ‘돼지들’(?)이란 이름으로 규정했던 수많은 ‘타자’들이 ‘너’가 아닌 ‘나’의 것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여전히 ‘청동공원’에서 살아가며 “방울을 쓰다듬”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리라.

다시 그녀의 서른 살에 빗대 말하자면, 어쩌면 그녀는 이념이 망각된 이 시대를 가장 이념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시인이리라.

박성필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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