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 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5·16 군사쿠데타가 있은 지도 벌써 43년이 지났다. 박정희는 사후에도 존경하는 대통령을 묻는 설문조사마다 70%를 상회하는 인기도를 과시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는 다양한 발언들이 쏟아졌다.
안타깝게도 최근의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이지 못하고 매우 정치적이다. 아직 그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평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의 군사 독재와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이 사라지면 역사가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릴 것이라 믿는다. 사실 박정희는 집권 말기 들불처럼 일어난 민주화 투쟁을 통해 이미 역사의 평가를 받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집권기에 한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 성장이라는 목적을 위해 그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갖가지 수단을 동원했다. 경제 개발 자금을 얻어내기 위해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고 부도덕한 전쟁에 군대를 파병했다. 세간의 말대로, 18년 동안 물불 안 가리고 경제 발전에 달려들면 누군들 그러한 성과를 내지 못하겠는가? 독재를 위한 경제 성장이었는지, 경제 성장을 위한 독재였는지도 곰곰이 생각해볼 주제이다.
그런데 왜 박정희는 아직도 향수의 대상인가? 그것은 우리가 아직 박정희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강력한 리더십을 통한 경제 우선주의로 대표되는 박정희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박정희가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기에 그를 좋아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인권과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서 잇따른 부패 사건과 경제 정책의 실패가 이러한 향수의 가장 근원적 이유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박정희는 기념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다.
두 개의 기념관을 대비해보자. 하나는 박정희 기념관이고 하나는 민주화 기념관이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공사에는 이미 100억원의 정부 예산이 투자됐다. 상암월드컵경기장 부근에 자리잡은 650평의 부지에 세금만 700억이 들어갈 예정이다. 반면 민주화 기념관은 부지 비용은 고사하고 건립 논의 자체를 국사학계 소장학자들이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먼저 추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은 박정희가 아니라 박정희에 맞서 민주와 정의를 위해 싸운 수많은 민주화 투사들이다. 하지만 그들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은 단 한 평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아직 이 땅에 진정한 민주는 멀었다는 뜻일까? 위풍당당한 박정희 기념관과 초라한 민주화 기념관을 번갈아 연상해보다 이내 쓴웃음을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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