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고수들_ 2) 탈레스·아낙시만드로스·아낙시메네스

고대 그리스 지역은 사색의 고수들이 처음으로 등장해 자웅을 겨뤘던 무대이다. 수많은 폴리스로 구성된 그리스는 어떤 곳이었을까?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를 통해 각색된 그리스인들의 모습은 ‘진취적인 교양인’ 이미지겠지만, 오리엔트 문명이 번창하던 시절 서쪽의 변방에 자리한 그들의 실상은 경악스럽게도 ‘호전적인 야만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척박한 토지에서 산출한 포도와 올리브를 가지고 해상 무역에 나선 그들이 때로는 해적으로 돌변해 약탈을 일삼았다는 흔적은 신화 속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올림포스의 막내 신 헤르메스를 기억하는가? 그는 상업의 신이면서 동시에 도둑의 신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던 그리스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은 동방의 강국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대립으로 인해 오리엔트가 쇠락하여 힘의 공백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로부터 문자와 화폐 같은 문명의 빛을 전수받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사자가 날개를 단 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화폐는 중앙집권체제가 부재한 그리스 사회에 무역의 활기를 불어넣는 기폭제가 되었다. 교역의 확대는 보다 넓은 세계의 경험을 가능케 했을 테고 경제적 번영은 삶의 여유와 그로 인한 사색의 기회를 그리스인들에게 안겨 주었을 것이다. 지중해 동부 연안에 위치한 그리스의 식민지 이오니아가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오니아 지역에서도 가장 번창한 무역도시는 단연 밀레토스다. 이곳에서만 걸출한 사색가가 셋이나 배출될 정도였다. 그 중 선배 격인 탈레스는 그리스의 7현인에 꼽힐 정도로 알아주는 현자였다고 한다. 그의 박학다식을 보여주는 몇 가지 일화들을 보자. 탈레스는 일식을 예언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밖에도 비례식을 이용해 피라미드 높이를 쟀는가 하면 기하학을 이용해 해안에서 바다의 배까지 길이를 쟀다는 말도 있다. 이쯤 되면 플라톤이 그를 두고 ‘기발한 기술의 고안자’라고 불렀던 것이 수긍 갈 만하다. 하지만 기술자로 머물기엔 그의 관심과 고민의 폭은 너무나 넓었다.

밀레토스의 현인들은 아등바등 살아가는 속세의 삶이 경박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스스로가 경제적 번영이 주는 안락함의 최대 수혜자였음에도 말이다. 별을 관찰하다 우물에 빠진 탈레스를 두고 그의 하녀가 “하늘의 것에는 골몰하면서 바로 코앞에 있는 것엔 무관심하다”는 핀잔을 했단다. 이에 발끈한 탈레스는 어느 해인가 올리브 풍작을 예견하고 시장의 압착기를 모조리 긁어모아 기름 짜는 일을 독점했다나 뭐라나!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다는 오만함과 좀 더 심오한 데에 마음을 두겠다는 고상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마음에 둔 곳은 어디였을까? 그것은 인간사를 포함한 자연 전체였고 그 배후에 존재하는 근본 원리, 즉 ‘아르케’였다.

퀴즈를 맞추면 현금이 즉시 지급되는 오늘날, 우리에게 그들의 아르케는 “탈레스=물, 아낙시만드로스=아페이론, 아낙시메네스=공기”로 익숙하고 이 정도면 충분한 지식이다. 하지만 컵라면 후루룩 말아 먹듯 암기해둔 3분짜리 상식에는 누대에 걸쳐 켜켜이 쌓여온 사색의 흔적과 지식의 깊이가 빠져있기 마련이다. 정작 중요한 건 무언가에 대한 ‘답’이 아니라, 그 무언가를 묻는 ‘질문’ 자체인데도 말이다. 물론 탈레스 이전에도 질문은 있었다. 지구는 왜 허공에 떠 있는가? 그거야 아틀라스란 거인이 어깨로 받치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아틀라스는? …. 결국 밀레토스의 현인들은 존재하는 만물의 배후에 전능한 창조주가 아닌 자연의 법칙이 있음을 알았으며 제시된 답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의문을 끊임없이 던짐으로써 진정한 사색의 고수에 등극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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