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주는 남자


문득 웃음이 났다. ‘손에 강 같은 평화’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고, 찬송가 한 구절이 맴돌아 입가는 소란스럽기까지 하다. 아뿔싸! 웃음이 잘못 나왔다. 이 시는 해학이 아니다, 차라리 추도에 가깝다. 위 시의 첫 머리는 이렇다: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시적 화자는 유품을 뒤적이다 안경알을 깨뜨린다. 그리고 텅 빈 안경테의 비어있는 한 단면, 렌즈가 사라진 자리에서 모성(母性)을 발견한다. 생전의 어머니가 자식을 가까이 하기 위해, “가까이 끌어당겨” 보기 위함이었노라 생각한다. 그래, 시적 화자의 말마따나 마음의 초점이나 잘 맞추고 지냈다면 편했을 텐데!

장경린의 장기(長技)는 바로 누군가를 웃기는 ‘방식’에 있을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슬퍼야 할 추도사를 유머로 승화시키는 능력 말이다. 이 시인 아무래도 뜻밖의 웃음 던져놓고 혼자 목 놓아 울 것 같다. 그 예상치 못했던 웃음! 그런데 우리가 이 시에서 쉽게 예측하지 못했던 것 중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바로 그가 어머니에 얽힌 사연을 하나의 이미지로 풀어놓는 자리가 바로 렌즈가 ‘사라진’ 자리라는 점이다.

그 부재의 자리에 저 평화의 나라로 가신 제 어머니를 그려내는 방식은 또한 뜻밖이다. 그의 창작에 대한 평가는 잠시 유보하기로 하자. 그의 깔깔 웃음소리가 들려올까봐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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