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주는 남자


가을이 그렇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바람에도 옷깃을 세우는 계절, 지난 시간에 추억을 덧입히는 계절, 그리고 그 추억 속 이름 하나 꺼내 괜스레 불러보는 계절, 가을이라 그렇다. 하지만 변한 것도, 변할 것도 없다. 가을 지나 겨울, 그리고 봄 여름 … 다시 낙엽은 떨어질 테니까.

그런데도 몸 한 번 더 웅크리게 되고, 팔 거죽 한 번 더 더듬게 된다. 시인의 가을도 다르진 않나보다. 램프도, 발자국 소리도, 개들의 소란도, 바람도 변한 것이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다른 것이 없지는 않았다”라고 하지 않는가. 왜 아니겠는가, 가을이니까 그렇다.

아니, 가을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마음이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그림자가 그럴 것이다. 온 종일 빛을 따라 다니는 그림자. 왜 문득 그 형상을 밟아볼 때가 있지 않은가. 빛 사라지면 사라지는 줄 뻔히 알면서도, 문득 밟아보는 마음. 그러고 보니, 가을 탓만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한 계절 지날 무렵, 눈에 띤 헛간의 물 자국 때문도 붉은 사리 때문도 아니리라.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워 그럴 것이다. 가을이라 그렇다, 아니 그 계절 놓지 못하는 우리네 마음 때문에 그럴 것이다.

박성필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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