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세기는 전쟁의 세기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포함한 수많은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1914년부터 1987년까지 1억 8천7백만 명이 ‘적국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죽어갔다. 20세기말 냉전 체제가 무너지며 21세기는 장밋빛 평화의 시대가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전쟁은 전선을 달리하며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1세기 첫 전쟁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다. 1인당 GDP 300달러의 약소국을 향한 제국의 막강한 힘에 세계인들은 넋을 잃었다. 그리고 2번째 전쟁이 지금 이라크에서 계속되고 있다. 헐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링컨 함상에서의 종전 선언이 있은 지 넉달 만에, 부시 대통령은 다른 나라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와 알카에다 지원은 거짓임이 이미 드러났고 미 정부도 이를 시인했다. 미국은 독재자 후세인으로부터 이라크를 해방시키겠다고 말했지만 미군을 향한 이라크 민중의 봉기는 미공군까지 투입해서야 막아낼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국은 독재자를 운운할 입장이 아니다. 미국의 전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았던 박정희도 반인권적 독재자였다. 3천명을 학살했던 칠레의 피노체트도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정권을 유지했다.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것 같던 이라크는 이미 제2의 베트남이 되어 버렸다. 이라크전은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이었다. 윤리성과 도덕성이 무시된, 명분없는 전쟁은 승리할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사실 명분 있는 전쟁이 어디 있겠는가? 그 명분이란 것도 정치 권력의 명분일 뿐이다. 수천 혹은 수만의 사람들의 목숨과 바꿀 정도로 고결한 그 무언가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면 그때는 정말 목숨을 걸고 총을 쏘면서 지켜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나타나는 전쟁은 그런 모습이 전혀 아니다.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 총경은 빨치산 총수 이현상을 사살하고 그를 화장하고 재를 직접 섬진강에 뿌렸다. 그는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새벽부터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에게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몇이나 알겠는가? 전투에서 죽은 수많은 군경과 공비들에게 ‘너희는 왜 죽었냐’고 물으면 민주주의를 위해서, 혹은 공산주의를 위해서 죽었다고 대답할 자 몇이 될 것인가?”
이라크전 전투병 파병을 놓고 다시 전국이 시끄럽다. 명분 없는 전쟁에 우리의 피를 바쳐야 할 이유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라크전에 국군을 파병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과실을 말한다. 그 어느 과실도 젊은이들의 피보다 값질수는 없다. 베트남전 미군 사망자는 6만여 명이었지만 탈영병은 10만 명에 가깝다. 그들이 왜 전장을 떠났는지, 무엇이 그들 스스로 총을 놓게 만들었는지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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