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주는 남자


혹시 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낯선’ 경험이지요. 살갑게 인사하고 돌아서다가, 문득 뒤돌아서는데 그녀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내 사람이 나의 것이 아니라 혹 그녀의 것은 아닌지 되물었지요. 어쩌면 나도, 그녀도 아닌, 누군지조차 모르는 이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아니겠습니다. 시뮬라크르(헛것들)의 시대를 영위하고 있는 우리인데.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구라』의 시인만큼 서글퍼할 이유는 없겠지요. 어차피 세상이 헛것들인데, 하지만 문득 문득 서글퍼질지도 몰라요. 어느 날은 “그래도 알 만큼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라고 탄식하겠지요. 하지만 진정한 비극은 바로 이런 데서 시작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허상들의 실상’을 찾아 나설 때 말이지요.

시인의 말마따나 “어딘지 서늘하거나 짭조름한 면이 없지 않”겠지만. 세상이 온통 헛것이라고 믿는다면, 적어도 우리는 비극적 세계관에 함몰되지는 않을 겁니다. 자, 그럼 이제 허상의 시대를 딱 그만큼만 사랑해볼까요. 아, 좀 전에 이야기했던 그녀를 사랑하냐구요? 물론이죠, 딱 시뮬라크르만큼만요.

박성필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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