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의 정정훈 변호사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편지함’에 도착해 있는 제5회 아시아 인권포럼 개최 관련 메일에서이다. 메일을 열어 포럼 일정을 보다가 첫 번째 세션에서 ‘이주노동자의 법적 지위 개선’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는 변호사 정정훈씨가 눈에 띄었다.
위의 주제에 대해 발표를 하는 그의 어투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이 풍기는 ‘똑 부러짐’, ‘다부짐’보다는 약자를 외면하지 못할 것 같은, 그들이 당하는 피해를 보며 흥분할 줄 아는 ‘사람다운 냄새’가 풍겨 왔다. 이제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위기 속 찾아온 자기 성찰

IMF위기가 찾아왔던 1997년, 과로로 죽는 사람도, 사는 게 힘겨워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많았던 그때 그는 29살이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하던 중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하게 됐단다. 고민 끝에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서른에 사법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낮은 곳에 임하는 용기로 소외된 희망을 되살리겠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로펌을 만들겠습니다.”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기 직전 그는 염형규 변호사가 동료를 모집하기 위해 띄어놓은 이 글귀를 보고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의 일원이 됐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 인권 문제를 중심으로 구체적 인권을 보장하고 제도적인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 사회 인권의 경계를 확장시키자는 철학을 기조로 활동하는 곳이다.

변호사 정정훈이 사회와 공감하는 법

‘공감’에서 그는 주로 이주노동자와 난민 관련 인권문제를 다룬다. 그는 이주노동자와 그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영화 ‘괴물’의 ‘독극물-괴물-바이러스’ 관계에 비유했다.

우리사회는 이주노동자를 범죄자, 일자리 침탈자 등으로 낙인 찍어 바이러스를 일으키는 괴물로 취급한다. 하지만 진짜 바이러스를 일으키는 주범은 괴물이 아닌 독극물이다. 즉, 사회성원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본질적인 원인이 되는 사회 구조에 대항해 구조의 개혁을 외쳐야 하는데, 독극물에 의해 같이 피해를 본 성원들끼리 서로 싸우는 형상이라는 것이다.

정정훈 변호사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연대’를 들었다.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사회로 들어온 후 그들을 위한 도덕적, 종교적 차원의 인권운동은 활발했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에는 한계가 있다”는 그는 “인권운동의 질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는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방 체제가 아닌 진정한 연대 체제로 가야한다”며 노동운동의 자체적 조직화가 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사회는 인종주의 문제가 사회에 담론화되지 못했다. 실제 법 내용은 노예제에 가깝지만 산업연수생, 고용허가제 등 이주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인 느낌의 단어를 사용하는 언어전략으로 진실을 가리는 정책들을 펴왔다”며 “이제 인종주의에 대한 논의가 표면 위로 떠올라 깊이 있는 고민을 하고, 이를 통해 도출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인권에 충실한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주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그이지만 때론 이주노동자의 시각으로 보는 데 한계를 느끼기도 할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그들과 완전히 같은 선에 서게 되는 것, 즉 완전한 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다만 계속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뒤 그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끊임없이 들으려 노력하는 것”을 들었다. 또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내 중심의 사고가 아닌 나와 그들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사고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나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다

2004년부터 그는 6년째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일하면서 힘든 점은 없을까. 그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을 가장 힘든 요인으로 꼽았다. “이런 답을 하는 게 오만하다는 것을 알지만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일하는 데 눈에 확 띄는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면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래도 얻는 게 있기에 6년째 일을 하고 있을 터. 변호사에게는 승소가 보람을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활동가들과 같이 활동하면서 내 자신 속에 있는 편견을 깨고 밖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느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그. 그에게 보람이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으며 사회에 대한, 세상에 대한 공감의 폭을 넓혀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는 상대방의 목소리뿐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데도 게을리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특히 대학생들에게 책 읽을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배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책 읽는 것은 지식습득의 과정이 아니라 나 자신과 대화하는 과정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최소한 책을 읽으면 자신의 존재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 자신을 배반하는 결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뿐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삶을 사는 사람, 자신에게 쉼없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세상과 더 많이 공감하는 사람. 앞으로 그가 더 많은 세상과 공감하길, 포착할 수 없는 변화이지만 미세한 움직임이 모여 그의 공감이 세상의 공감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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