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향한 스토리로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왠지 내 주위에도 있음직한 사람들이 나와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바로 KBS ‘인간극장’이다. 10년 동안 이어져 온 KBS의 휴먼 다큐프로그램인 인간극장은 주중 아침마다 시청자들과 함께 울고, 웃고 있다. 이런 따뜻한 이야기를 제작하는 사람, 인간극장의 정지운 PD를 만나보자.

인간극장은 KBS가 큰 틀을 구성하고, 외부의 프로덕션이 실 제작을 하는 형태의 외주제작 프로그램이다. 그렇기에 인간극장에는 KBS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PD지만 KBS PD는 아닌, 일종의 ‘프리랜서 피디’가 있다. 사실 이런 프로덕션이 수십 개에 이르고, 일명 ‘바깥 쪽’ 피디가 더 많다고. 인간극장을 실 제작하는 정지운(38)씨도 ‘제3비전’이라는 다큐 전문 프로덕션의 PD다.

그는 동국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후, 영화인의 꿈을 키우다 PD로 정착하게 됐다. 프로덕션 PD는 KBS 등의 방송사 PD와 다르게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보단 힘든 점이 더 많다고 한다. 정지운씨도 “모두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KBS같은 방송사를 들어가고 싶어 한다. 이러한 프로덕션은 방송사에 비해 열악한 것이 사실”이라며 수긍했다.

인간극장 제작은 가장 먼저 아이템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지운PD는 “사연도 있고, 진실성도 있고, 적극성도 있는 인물을 찾는다”며 주인공의 자격을 말했다. 인간극장에 맞는 인물을 찾아 그 후보를 추리면 직접 사전취재를 나가 다시 한 번 적격성을 판단한다. 정지운 PD는 “직접 만나서 그 분한테 영상화할 수 있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 시청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지 등을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그 후, 최종적으로 ‘괜찮다’라는 판단이 서면 인간극장을 총괄하는 KBS의 김형일 PD와 진행방향 등을 확인한 후,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다.

정지운 PD는 “아이템이 잡히면 그 이후로는 온전히 제 몫이죠. 이제 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작가와 함께 고민하고, 카메라 감독과 제가 촬영에 들어갑니다”며 “촬영은 짧게는 보름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이어져요. 하루 서너 시간 촬영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줄 수 없잖아요”라고 진행 과정을 말했다.

다큐 프로그램이다 보니, 사전에 작가와 예상했던 스토리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지운 PD는 “촬영을 시작해보면 예상했던 스토리와 완전히 다르게 진행될 때도 있어요. 암환자 이야기를 다룬 ‘내 사랑 내 곁에’ 편에서는 암환자가 열심히 살려고 하는 모습을 찍으러 갔는데 실제 촬영에 들어가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부인은 살리고 싶어 하는데, 암환자였던 남편은 조금은 체념을 한 상태였죠. 그럼 그때부터 살리고 싶은 자와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자의 이야기가 되는 거예요”라고 한다. 이어 그는 “이렇게 예상 스토리와 전개 방향이 달라질 때, PD가 유도 질문을 한다든지, 뛰어난 편집술을 이용해서 PD의 처음 의도대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지 않고, 감동도 없게 되죠.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 가장 좋아요”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대로 ‘흘러가기’엔 아쉬울 때도 있다. 그래서 인간극장은 80~90%의 ‘리얼’에 10~20%의 ‘연출의 힘’이 덧붙여진다. “‘주인공이 엄마를 만나러 가면 더 괜찮은 이야기가 될 거 같은데’ 싶으면 엄마를 만날 상황을 만들고, ‘주인공이 지금 용돈을 받았으면’ 할 땐 용돈 받는 날을 좀 앞당기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있죠”.

“누가 자신의 씻는 모습, 일어나자마자의 모습을 전국에 방영되는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고 싶겠어요. 이런 걸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가족같이 되는 것이 중요해요”라는 정지운 PD는 “사람의 실제 삶을 소재로 하는 인간극장은 출연자와 제작진 간의 교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극장 촬영의 성공여부는 ‘그 사람 삶 속에 얼마나 잘 파묻히는가’이다. 그러려면 대상의 삶에 묻혀 자연스럽게 출연자와 속엣말까지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돼야 한다. “‘당신의 까만 손’이란 편을 찍을 때 부부가 제작진에게 친절하긴 한데 속사정이나 진지한 말들은 안했어요. 이럴 땐 마음을 여는 게 먼저니까 촬영을 하루 이틀 접고 같이 연탄을 배달하며 땀을 흘렸어요. 그랬더니 점점 마음의 문을 여시더라고요”

가장 정들고, 기억에 남는 편을 묻자 정지운 PD는 언제나 ‘지금’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지금 작품’빼고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별난 한의사 부부’편을 꼽았다. 한의사 부부가 도시의 생활을 접고 첩첩산중 시골로 들어가 한의원을 연다는 ‘별난’ 사연의 주인공들이었다. “이 분들이 밤에 자꾸 산책을 다녀서 따라가 봤더니, 두분이 나란히 차 보닛 위에 누워서 별을 바라보시더라고요. 적막한 산골에서, 함께 별을 바라보면서 즉석에서 한 분은 시를 짓고, 그걸 들으며 옆에 누워있던 한 분은 그 시에 음을 입혀 노래를 만드시더라고요. ‘이렇게 순수하고 예쁘게 사시는 분들도 있구나’하고 감탄했답니다” PD도 감탄한 이 편, 시청자의 반응도 뜨거웠음은 당연지사다.

2009년 4월부터 인간극장이 아침 7시 50분으로 시간대를 옮기면서, 아침드라마와의 시청률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극적이고 자극적인 아침드라마와의 경쟁 속에서도 인간극장은 평균 12%라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동시간대의 타 프로그램보다 높거나 비슷한 정도다. “처음엔 시청률이 잘 나오고, 시청자가 울고 웃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가장 중요한 게 출연자의 행복이라는 걸 알았어요. 시청자와의 교감도 물론 중요하지만, 출연자가 자신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보고 ‘아 나 괜찮은 사람이구나, 잘 살았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제가 촬영할 때 잊지 않고자 하는 점이죠”라는 정지운 PD. 사람냄새 폴폴 나는 정겨운 인간극장의 인기 비결은 이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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