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객이 적고 효율성이 낮아 역장이 배치되지 않고 일반 역에 비해 규모가 작은 역. 바로 국어사전에 제시된 간이역의 정의이다. 한국철도공사는 간이역을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는 역’이라 정의한다.

KTX 개통에서부터, 개량공사, 복선전철화 등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차의 변신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반면, 빠름과 효율이라는 변화하는 가치를 따라잡지 못한 기차와 기차역들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느림의 미학이 담긴 간이역의 매력을 알리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2005년부터 개인 블로그에 간이역 관련 글을 포스팅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달 『간이역 오감도』란 책을 펴낸 신명식(39)씨다.

기차, 간이역 알리미가 되다
기차가 좋아 한국철도공사에 입사한 신명식씨는 2005년부터 간이역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여 전국 600여 개의 기차역을 모두 방문했다. 조금 쉬어갈 법도 한데 일이 없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간이역을 찾아다닌다고. 가까운 역은 대중교통이나 기차를 이용해서 찾아가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갈 수 있는 데까지 기차를 타고 간 후 렌터카를 이용해 찾아간다고 한다.

그가 간이역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일까. “95년에 폐선된 ‘협궤철도’의 철로가 집 근처에 공원으로 보존돼 있는데 아들에게 폐선되기 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도 사진 한 장 제대로 남아있는 게 없더라고요. 아쉬움을 느끼고 있던 찰나, 2004년에 KTX가 개통되면서 정기적으로 많은 간이역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어요”라는 신명식씨는 그때부터 무작정 간이역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스러운 소박함, 간이역
신명식씨가 느끼는 간이역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아, 아직도 이런 데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마디로 옛 느낌이 살아있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었죠”라며 그는 간이역과 처음 마주했을 때의 느낌을 ‘충격’이라고 표현했다. 간이역의 또 다른 매력에 대해 그는 ‘소박함’이라고 대답했다. 있던 것도 없애고 새로 만드는 세상에, 최소한의 것만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간이역의 모습이 그에겐 편하게 다가온다고 한다.

신명식씨는 간이역도 제각각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역은 어렸을 적 추억이 서려있어 그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과 함께 향수를 공유한다고 한다. 그는 “제 블로그를 방문한 중년 분들이 고향에 있는 역과 관련된 글과 사진을 보고 느낀 뭉클한 감정들을 댓글로 남겨놓을 때가 많아요”라고 했다. 한편 산과 들에 어우러진 역은 풍경이 아름다워 절로 발길이 이끌린다고 한다. 그는 “그런 곳에 혼자 앉아있으면 호젓한 느낌이 들어서 잠시 있는 그 순간마저 좋아요”라고 말했다.

간이역이 사라지는 현실
신명식씨는 철도회사직원으로서 누구보다 철도의 발전과 현대화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 한명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70년대 이후 철도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도로교통의 발전에 집중한 것이 사실이에요”라며 이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2004년, KTX를 개통한 것이 철도 분야의 처음이자 마지막 화제였다고. 누군가가 “도로는 뚫으면 뚫을수록 막힌다”고 했던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가용을 보편적인 운행수단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아무리 도로를 증설해도 늘어나는 자동차로 도로 위의 정체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적다. 따라서 기차가 자동차와 경쟁해서 살아남으려면 그만큼 더 빠른 기차를 개발하고, 더 많은 선로를 증설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여기에 ‘올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 빨리, 더 많은 사람들을, 더 멀리 이동시켜주는 데에만 집중하지 말고 단 몇 사람만 이용하는 시골의 작은 역이라도,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자는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역들을 현대적 기준으로 판단해 쉽게 없애지 말고 철도 테마공원 같은 관광지로 개발해 보존하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춘선이 사라진다?
현재 경춘선은 10월에 완공 예정인 복선전철화 공사가 한창이다. 그동안 우리가 이용해 온 경춘선은 단선 철로이다. 남춘천역에서 청량리로 가는 열차와 청량리역에서 남춘천역으로 가는 열차가 철로 한 개를 같이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복선전철화가 시행되면 철로가 2개로 증설돼 왕복 차량이 각각의 철로를 이용해 더 빠르게 운행될 수 있다. 또, 기존의 무궁화호 기차는 경전철 차량으로 대체돼, 더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하게 춘천과 청량리역을 오갈 수 있게 된다.

한편 대학생들은 더 편하게 MT를 갈 수 있다고 좋아하기 전 되돌아봐야 할 점이 있다. 복선전철화를 통해 신식 철로와 역사를 이용하게 되는 대신, 그동안 수많은 대학생들을 맞이했던 백양리, 강촌, 남춘천 등의 기존 역사와 철로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특히, 화랑대역은 복선전철화로 인해 경춘선 노선에서 사라질 역으로 결정됐다.

이에 신명식씨는 경춘선 역들 중 추천하고 싶은 역으로 ‘화랑대역’을 꼽았다. “화랑대역은 육군사관학교의 풍성하고 우거진 나무들로 인해서인지 서울 같지 않은 분위기를 풍겨요”라며 그는 “운영이 중단되기 전에 방문해서 대합실에도 찾아가 보고, 그러면서 여러 추억거리들을 많이 남기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강촌역에서 백양리역까지 걸어서 30분, 자전거로는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아요. 직접 길을 따라 걸으면서 이제 곧 사라질 역사를 눈과 마음에 새기고, 주변풍경을 사진으로 남겨놓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라는 그는 예전 MT의 기억을 떠올려 보고 싶다면, 백양리역을 다시 찾아 보는 것을 추천했다.

간이역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과거에 비하면 간이역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 증가한 편이지만 아직도 미미한 것은 사실이다.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대개는 단순히 간이역을 추억하며 머릿속에서 그 모습을 그려볼 뿐, 실제로 방문하려는 의지는 크지 않다.

그럼에도 간이역을 방문하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신명식씨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일단 특별한 기대를 하지 말고 간이역을 방문해 줬으면 좋겠어요. 시간과 돈을 투자한 만큼 뭔가를 보고 오겠다고 기대를 하면 결국 부담이 돼 버려요. 철도마니아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간이역은 심심하고 단조로운 곳으로 보일 뿐이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고속도로에서 잠시 휴게소에 들르듯 가벼운 마음으로 간이역에 방문하기를 권한다. 덧붙여 그는 “여러 여행코스를 방문하다가 중간에 한두 곳 정도 잠시 들러본다면 자신만의 시각으로 간이역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조금씩이라도 간이역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늘어난다면 그만큼 철도문화가 더 성숙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겐 어렸을 적 추억이 서린 공간으로, 또 다른 이에겐 휴식과 여유의 공간으로 남아있는 간이역.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일상에 지친 심신을 위로받고자 한다면, 바로 간이역에 관심을 기울여 보길 권해본다. 지옥 같던 시험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면 친구들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가까운 간이역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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