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건축의 길을 걸으며 전통을 되찾다
건축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말하는 것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가로서 쉽지 않은 목조건축의 길로 들어서게 된 그의 건물은, 목조인 듯 목조가 아닌 듯 뚜렷이 구별이 가지 않기도 하지만 자연과 어울리는 구조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느낌을 안겨준다.
건축가 조남호씨가 처음부터 매력을 느끼고 목조건축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조남호씨는 차근차근 건축가의 길을 걷는다. 그는 대형설계사무소(정림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쌓은 후 독립해 자신의 사무실을 열었다. 오피스 빌딩을 디자인하던 그가 목조건축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 계기는 1998년 발발한 IMF 때문이었다. 경제위기 이후 실제적으로 많은 일감이 줄어들었지만 그의 회사는 인원 절감을 시도하지 않았다. 월급을 줄여나가면서까지 동료들과 함께이고 싶었다는 그. 일감이 줄었지만 그만큼 여유가 생겨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며 힘들었던 시절을 웃어넘긴다.

월급도 줄고 여유가 생기다 보니 조남호씨와 동료들은 ‘우리 함께 시공을 해보자’라며 전문화된 또 다른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설계와 시공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설계를 하고 시공업체가 정해지고 난 후 그 과정을 감리하는 역할만 수행하는 건축가에게 시공은 완전히 새로운 시도였다. 가장 보편적인 콘크리트 구조는 이미 전문화된 영역으로 분화되어 있고, 다양한 분야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에 뛰어들 수 없었다. 반면 목조는 목수를 중심으로 비교적 단순화된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가 목조건축 시공을 선택한 이유였다.

나무를 이용해 집을 짓는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조남호씨도 “불에 타기 쉬운 나무의 단점 때문에 나무로 집을 지을 때는 법적으로도 제약이 있다”며 “하지만 현대식 목구조를 사용하면 안전한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무의 강도가 어느 정도이고, 고온에서 얼마나 견디냐 등등을 따져서 안정한 성능이 있는 나무들로 만들거나, 보증된 제품만이 목구조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건식공법을 사용하여 목조를 콘크리트 혹은 철물과 결합시키는 것이 현대적 목구조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첨단의 이미지도 갖고 있는 현대식 목구조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조남호씨의 사상은 전통적이다. 건물을 지을 때 전통적인 정신을 더하기 위해 공간적인 개념을 구현해 내는 것이다. 한옥에서 옛 조상들이 함께 모이거나 휴게 공간으로 사용했던 ‘루’나 ‘중정(건물 사이의 뜰)’ 등을 현대식 건물에 재현해 낸다. 전통공간을 구현한다는 것은 한옥의 양식을 그대로 따온다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인식이 배어 있는 공간적인 측면을 목조건물에 녹여내는 것이라고 할까.

한옥 이후 목조건축이 우리한테 오랫동안 떠나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인식은 그의 건물을 보면 조금 달라질 법도 하다. 이렇게 새로운 시도는 그에게 자신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사실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접근했지만 목구조가 나의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친환경적인 목조건축
“목조건축은 자연과 친해요”라며 조남호씨가 목조건축의 장점을 피력한다. 산림의 대부분은 굉장히 많은 양의 탄소를 저장하지만 나무들이 죽어 대부분의 탄소가 공기 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조남호씨는 “산의 나무들을 건축자재로 만들면 집이 유지되는 기간 동안, 또 집이 해체되더라도 재활용돼서 다시 집이되는 기간 동안 탄소가 대기 중으로 돌아가지 않으므로 탄소를 나무에 오랜 기간 저장할 수 있는 것이죠”라며 친환경적 측면을 강조했다. 또한 그의 말에 따르면 철, 콘크리트, 알루미늄 자원의 경우 재생되려면 만 년이 넘게 걸려 순환이 안 되지만, 나무는 70년, 100년이면 재생돼 충분히 순환이 되는 것이다.

조남호씨는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인 목구조 덕분에 시민들과 정자 만들기를 하게 됐고 이것이 환경문화상을 받게 된 이유가 아닌가 한다”고 말하는 그의 손에는 뭉뚝하게 깎인 나무 연필이 쥐어져 있었다.

서울시립대와 맺은 인연
조남호씨는 서울시립대와 인연이 깊다. 10여 년 동안 서울시립대의 교수자리에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리대학의 건물 중 그의 손을 거쳐 간 건물이 많다. 건설공학관 및 인문학관 증축, 곧 완공을 앞둔 강촌 수련원과 앞으로 공사에 들어갈 신본관 설계는 모두 그가 맡은 작업들이다. 특히나 그에게 건설공학관 증축은 각별했다. 후배들이 앞으로 사용할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건설공학관에 들어가 보면 모두 시멘트벽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건식공법화하여 목조를 사용한 것이다. 그는 건설공학관에 대해 “전농관과 건설공학관 사이 숲을 어떻게든 존중하기 위해 층을 띄우고 외부의 공간을 마련했다”고 했다. 또한 그 안에 공부하는 학생들은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환히 드러난 창을 통해서 한명 한명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후배들에게 “한 가지 것을 하게 되어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헌신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라고 조언했다. 그가 건축가가 된 데에도 멋있는 동기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학창시절까지만 해도 건축가의 길을 가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1학기가 지난 이후에는 건축에 몰두해 흔들려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내가 이렇게 한 우물을 팠기 때문에 잘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2학년에 올라갈 때에 신범식 교수님이 무서운 과제와 냉정한 말씀으로 우리들을 긴장시켰던 것도 이제는 다 추억이에요. 그때는 디스코텍에 가서도 건축에 대한 생각을 했었죠”라며 웃음을 보였다.

당신의 공간을 생각합니다
조남호, 어느새 정점에 달해 있는 그에게 건축이란 무엇일까. 그에게 묻자 “글쎄요... 인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과 같은 것 같아요. 건축이 삶의 방편만은 아니죠”라고 답했다. 이어 “결국은 인생이 무엇이냐, 사람이 무엇이냐, 공동체라는 의미는 무엇이냐라는 질문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문학적 질문들이죠. 이러한 질문을 갖고 소설을 쓸 수도 있는 것이고, 예술을 할 수도 있는 것인데 건축은 어떤 이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조남호씨는 이처럼 ‘집’이라는 따뜻한 공간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생각하며 집을 설계한다. 그는 “나의 작업이 훌륭하지 않아도 나만의 작업을 하는 것이 독립건축가의 길인 것 같다”며 앞으로도 자신의 작업을 계속해 나가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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