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존재는 다른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잊혀져 간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처럼 의미를 부여해 ‘하나의 몸짓’을 ‘꽃’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된 것에 불과했던, 그렇기에 일상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물건들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지난 사람들의 삶을 담아 진정한 유물로 재탄생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유물관리과장 정명아(국사 87)동문을 만나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을 만들어 내는 학예연구사에 대해서 들어봤다.

정명아씨가 학예연구사가 된 계기
“야 참 오래간만에 보는 명함이네. 학교 로고에 맞춰서 명함도 바뀌었네요. 우리대학 박물관에서 일했을 때 나도 이런 명함을 썼었는데…” 첫 만남에서 기자가 준 명함을 보고 정명아씨는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정명아씨는 지난 91년 6월부터 10년간 우리대학 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을 했다.

정명아씨는 대학 시절 고전 역사책을 읽으면서 역사 전반에 대한 공부를 했다. 그녀의 공부는 책에서 그치지 않았다. 국사학과인만큼 답사를 많이 다녔는데, 문화재를 보러 다니는 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고 한다. 그렇게 대학 생활을 하던 정명아씨에게 어느 날 우리대학 박물관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91년도에 우리대학에서 일하던 두 분의 학예연구사가 다른 대학의 교수로 임용돼 자리가 비게 된 것이다. 이에 학예연구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우리대학 박물관의 학예연구사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됐다.

학예연구사는 멀티플레이어이자 스토리텔러
학예연구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까.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할 유품을 수집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을 학예연구사 혹은 큐레이터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단순히 유물관리만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명아씨는 학예연구사를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하는 직업’이라고 정의했다.

학예연구사가 하는 일은 유물관리과, 조사연구과, 교육홍보과, 전시기획과와 같은 여러 부서에 따라 그 역할이 구분된다. 유물관리과는 기증받거나 구입하여 수집한 유물을 관리하고 등록하는 일을 한다. 유물에 대한 세부 정보를 기록한 명세서를 만드는 것도 유물관리과의 일이다. 조사연구과는 유물과 관련해 직접 발굴 및 지표조사를 실시한다. 교육홍보과는 박물관을 찾은 손님들에게 유물들을 설명해주는 일을 한다. 전시기획과는 유물을 어떻게 전시할 것인지를 기획한다. 특히 박물관에서 하는 특별기획전을 준비한다. 학예연구사는 한 부서에 머무르지 않고 각 부서를 3~4년마다 순환하면서 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요즘 박물관에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에서 문화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학예연구사들은 시민들에게 문화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도 맡게 됐다. 정명아씨는 “시민들이 박물관에 바라는 기능이 더 많아지고 있다”며 “서울역사박물관이나 중앙박물관과 같은 고전적인 박물관이든 다른 곳이든 엔터테이먼트 기능이 곁들어지지 않으면 재미있는 다른 기관에 관람객들을 빼앗기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역사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것에서 벗어나 관람객들 곁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로비에서 찾아가는 음악회 서비스, ‘음악이 흐르는 박물관’과 같은 문화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명아씨는 “교육홍보과에서 담당하는 교육프로그램 운영은 선생님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어울려요. 전시 기획은 참신한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호감을 이끌어내는 일이니, 디자인 인테리어도 학예연구사의 중요한 소양이 되죠”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처럼 박물관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든 부서에서 일을 해보게 돼니 결국 학예연구사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죠”라며 웃었다.

이렇게 다양한 학예연구사의 역할들 중에서 정명아씨가 꼽는 학예연구사의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역할은 바로 유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외국의 연구사례나 우리나라의 연구 등을 통해 새롭게 얻은 유물들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 뒤에 흥미나 재미를 유발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들려주는 역할을 한다. 정명아씨는 “나를 통해 유물이 해석되고 또 그 유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만들어지죠. 학예연구사는 이야기를 만들고 꾸밈으로써 유물과 시민을 소통시키는 존재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어 “시나리오를 만들어 전시를 구성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전시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것 같아요. 열심히 기획한 전시가 관객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으면 더 기뻐요”라고 덧붙였다.

학예연구사, 전망 좋은 직업
이러한 학예연구사는 사학과 외의 학생들이 직업으로 삼기에는 부담스럽지 않을까. 정명아씨는 사학과 학생들에게 유리할 순 있지만 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말했다. 위에서 말했듯 학예연구사의 일들이 다양해 역사적 지식 외에도 요구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학예연구사가 되기 위해선 준학예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데 준학예사 자격증 시험의 필수과목은 외국어와 박물관학으로 구성돼 있다. 이외에도 선택과목이 고고학, 미술사, 예술학, 건축학 등으로 다양하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정학예사가 되기 위해선 경력인증이 되는 박물관에서 일정기간 이상 일을 해야 한다. 2년 이상 일을 하면 3급 정학예사 자격증을 딸 수 있고, 5년 이상 근무하면 2급 정학예사가 된다.

정명아씨는 학예연구사의 수요가 앞으로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화적 욕구가 강해지는 요즘이기에 박물관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 대략 500개의 박물관이 있지만 아직도 인구대비 박물관 수는 선진국에 못 미치고 있죠. 하지만 앞으로 사람들의 여가시간이 많아질 것이기에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박물관의 수는 그들의 수요에 맞춰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박물관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쌓았으면
“우리대학 박물관에 있을 때 열심히 전시를 준비했었죠. 그런데 학생들의 관심이 너무 없었어요. 밖에 나가서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에,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하죠. 그런데 이런 인문학적 소양을 박물관에서 많이 키울 수 있거든요. 후배님들이 박물관에 많이 다녔으면 좋겠어요” 정명아씨는 따라서 좋은 전시회가 있으면 자주 쫓아다니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꾸 보다 보면 안목이 생겨서 더 좋은 전시회들도 찾아다닐 수 있다고.

마지막으로 정명아씨는 관람하는 방법에 대해서 충고했다. 첫째,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보려고 하지 말 것. 박물관의 전시실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유물을 보려고 하면 제대로 유물을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번 온다는 생각으로 자주 와야 한다고 했다. 둘째, 유물에 관한 설명이나 정보를 볼 것. 유물에 관한 설명이나 정보를 봐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물관에 있는 PDF, MP3 기기를 활용해 유물에 관한 정보를 들으면서 박물관을 관람하길 조언했다.



다음호에서는 비즈니스 리서치 & 컨설팅회사인 The monitor에서 일하고 있는 윤한성(회계 95) 동문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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