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등학교 교실이 있다. 그 교실에서 소위 짱을 먹고 있는 조선이라는 학생이 있다. 사실 그 짱이라는 것이 학업 성취도나 인간성보다는 싸움 실력으로 결정된다. 그러던 어느날 가장 많이 떠들던 조선이 교탁 앞에 나와 이야기한다. “이제부터 나는 조용히 하겠다. 솔직히 이 앞에 앉은 경향이나 한겨레 같은 애들 너무 떠든다.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내가 나서겠다.” 필자에게는 그 자리에서 큰 소리 웃을 만한 용기가 없다. 하지만 이 말만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너나 똑바로 하라고.
대한민국 일등 신문 조선일보가 ‘조선일보는 자전거 경품을 없애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사고(社告)를 냈다. 조선일보의 이런 변화에 대해 당혹스러워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신문 시장이 과열되고 있으니 경품제공을 중단하고, 앞으로는 신문의 질로 승부하겠다니 박수를 쳐줄 만한 결정이다.
하지만 한 꺼풀 열고 보면 조선일보가 정말 반성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유가지 늘리기 위한 출혈 경쟁, 작년 3월 자전거 경품 내건 한겨레 첫 적발돼’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그리고 매출액 대비 위약금 순서에서 조선일보가 동아, 세계, 중앙, 경향, 한겨레에 이어 6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만약 지국마다 자전거처럼 비슷한 경품을 걸어 비슷한 위약금을 물었다면 매출액이 많은 조선일보가 매출액 대비 위약금의 순위가 낮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사고(社告) 내용은 읽기 민망할 정도로 책임 전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의 사고를 어떻게 봐야 하나? 독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농담을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치기엔 너무 진지하고 재미도 없다.
솔직히 필자는 조선일보가 선수를 쳤다는 사실 자체가 슬프고 얄밉다. 광고주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많이 팔리는 신문을 좋은 신문이라 생각한다. 많이 팔리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신문은 라면이 아닌데도 말이다. 돈을 많이 버는 이유가 돈이 원래 많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래서 신문사는 자기 신문을 많이 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이기에 이 같은 약속을 할 수 있다. 마이너 신문사는 그런 약속을 하기 싫어서 하지 못한 게 아니다. 한겨레21에 실린 양담배 광고를 보면서 생기는 안타까운 마음을 독자들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독자적 시장을 구축하고 신문을 만드는 입장에서 우리의 처지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득 이런 고민이 들었다. 만약 민중시대신문이 등장해 자전거를 걸고 신문을 배포한다면 우리는 김치 냉장고로 맞대응 해야 하나? 사실 중소영세 신문사의 입장에서는 막연히 시립대 학우들의 현명한 선택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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