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세계 안데스 : 콜롬비아,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그들만의 상식

커피 혹은 내전의 나라 콜롬비아?

콜롬비아는 스페인 식민 통치의 유산으로 커피를 비롯한 소수 일차산품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농업국가로 출발해, 산업화가 이루어진 지금도 커피 가격이 하락하면 국가경제가 휘청거린다. 또한 50여 년에 걸친 내전은 국민 대다수에게 끔찍한 유혈 폭력사태의 기억을 현재진행형으로 남겼다. 수도 보고타는 800만 명이 넘는 인구에,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는 도시의 외곽, 무단점유 정착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도시외곽의 인구는 이미 200만 명을 넘어 지금도 매일 증가하고 있다. 내전으로 30여 만 명 학살, 국민의 10%가 난민, 중고등학교 취학률이 54%인 나라. 우리가 TV에서 보던 콜롬비아의 이미지는 이렇게 ‘절망’과 ‘혼돈’이었는지 모른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몸의 학교’ 학생들의 공연과 알바로 레스트레포 교장, 학교 대신 BibloRed를 통해 다양한 교육을 제공받고 있는 보고타의 아이들.

선진국도 배워가는 사회시스템

그러나 실제로 발딛어본 그곳에서 나는 오히려 도시문제 해결의 많은 부분을 배워야 한다고 느꼈다. 그들이 모두 옳기 때문은 아니다. 모두 성공한 것도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해결노력 속에서 장기적인 성과를 낙관하게 하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국내에도 일부 소개된 바처럼 보고타는 소위 선진국도 배워간다는 저비용 고효율의 간선급행버스체계(BRT)를 갖추고 발전시켜가는 도시다. 1999년 시작된 이 시스템으로 보고타에서는 2003년 2월 현재, 하루에 중앙버스전용차로의 간선노선이 경전철보다 많은 시간당 4만 5천 명의 승객을 수송하고 있다. BRT시스템 이용자들은 연평균 223시간을 절약했는데, 그들 중 9%가 과거에 자가 승용차를 타고 출퇴근하던 사람들이다. 또한 실시 2년 만에 교통사고가 현저히(1999년과 2001년 사이 충돌사고 건수는 1060→220건, 부상자는 720→180명, 사망자는 66→5명으로 감소) 줄어들었으며 대기오염과 시간당 통행 속도도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었다. 실제로 보고타의 거리를 걸으며 승용차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중심가는 유명한 트랜스밀레니오 시스템에 따른 공공버스들이, 아직 시스템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민간버스들이 주류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고타에는 ‘비블로레드 BiblorRed’라는 도서관과 지역사회의 연계 프로그램이 있다. 이는 보고타 시내 중심 3개 대형 도서관과 30개 이상의 소규모 도서관, 마을도서관들이 함께 주민들에게 문화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것으로 1998년부터 실행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움직이는 도서관이나 도서관의 책을 무료로 대출받아 읽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도서교류서비스, 도서관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이들과 독서 기회를 공유하기 위해 시내 곳곳의 신청소나 인터넷으로 책을 고르면 책을 배달해 주는 찾아가는 책 서비스, 자발적으로 형성된 문화소모임에 대한 지원 등 다양한 구성을 자랑하며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이러한 지역사회 개혁을 위한 네트워크가 도시 곳곳에 침투해 있기 때문에 빈민 지역에서도 많은 취약계층이 공공도서관을 통해 정보와 문화를 제공받고 있었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BibloRed의 열람실 광경, 도시노동자들에게 휴식을 제공해주고 있는 수변공간, 유명한 트랜스밀레니오 시스템의 일환으로 운영되는 굴절버스.

생각하고 표현하는 법을 가르치는 ‘몸의 학교’

더욱 혁신적인 사례도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항구도시, 카르타헤나. 그러나 이 도시는 “이곳에는 여섯 개의 신분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각하고, 마약 상인들과 게릴라가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며, 인구의 2/3가까이가 빈민층인, 그래서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절망적인 곳에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쉽게는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차원의 직업교육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그리고 지역기업의 주머니에도 돈을 채워 넣는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일 수 있다. 그러나 카르타헤나에서는 이보다 더 혁신적이고 위험한 교육이 싹텄다. 뉴욕과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던 무용가 알바로 레스트레포는 1997년 돌연 고향으로 돌아와 학교를 세운다. 이름은 ‘몸의 학교’. 학교라고는 하지만 두 개의 사무실과 창고, 그리고 2층의 크지 않은 연습실로 이루어진 작은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폭력조직이냐 아동착취냐’라는 암울한 선택지밖에 없던 아이들에게 ‘스스로에 대한 존경’을 가르치려 한다. 콜롬비아 사람들에게 ‘춤‘은 뼛속깊이 자리 잡고 있는 전통이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몸’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경험하도록 하고 각자가 가진 상처와 분노를 춤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한다. 즉 아이들은 이곳에서 돈을 벌어 살아남는 법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많은 학생들을 전문예술가로 키워낸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더 건강한 삶을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지역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꿈꾸게 하는 대안학교로서 자리매김한 것이다.

안데스에 사는 ‘그들의 상식’으로

아직 이들의 도시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또한 문제는 언제든 다시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이들의 성과들이 공통적으로 깨닫게 하는 것이 있다. 우선 도시문제는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는 것이다. 아무리 부유한 도시라 해도 살고 있는 사람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좋은 도시가 아니다. 또 하나는 공공성과 자발성의 행복한 조합이 결국 사람이 행복한 도시를 만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의미심장한 점은 교통시스템도, 도서관도, 몸의 학교도 그들만의 상식으로 함께 하는 행복을 꿈꾼다는 점이다. 차를 타는 것보다 걷고 달리는 것이 더 행복하고, 소유할 순 없어도 공유하는 자산이 더 크며, 주체적인 생각이 돈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진다는 상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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