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 주는 남자


시인은 언어로 산다. 시인은 언어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숙명으로 산다. 그런데 그러한 숙명이 비단 시인만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살아가는 매순간 언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말을 삶의 업(業)으로 살아가는 나는 언어가 삶을 옥죄는 감옥이라 생각하곤 한다. 어떤 필요로, 혹은 불필요하게 늘어놓은 말들을 수습하기 바쁜 게 우리네 일상이 아니던가. 하여, 박용하의 ‘새털구름’은 우리 일상에 던져진 충고로 읽힌다.

‘입’(口)과 ‘잎’(葉) 사이에서 부유하는 이 시를, 분명 그는 가을하늘 아래서 썼으리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숙연해지는 저 생물들의 운명 앞에서 그는 인간의 입과 그 곳에서 새어나오는 말들을 떠올렸으리라. 저 시구, “입은 철들지 않았고 사람들은 물먹었다”는 하나의 충고이자, 또 다른 생각에서는 비명으로 읽히기도 한다. 왜 시인은 이토록 절규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 이유는 말로 꾸며낸 지키지 못할 숱한 약속들,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그려내는 언어들이 우리 삶을 힘겹게 하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자, 잠시 입을 살며시 닫고 가을하늘을 올려다보시라. 혹시 운 좋게 새털구름이 있는 맑은 하늘이 보이걸랑 그 구름들에게 눈인사를 건네 보자. 그들이 우리에게 자연의 언어 한수쯤 가르쳐주지 않겠는가.

박성필(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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