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 동문의 노래_프로의 시선

“중학교 2학년 때, 누가 넌 커서 뭐 할거니라고 물어봐서 기자가 되겠다고 했는데, 그게 내 꿈이 돼버렸다. 왜 그때 기자가 되겠다고 했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중학교 2학년 때 기자가 되겠다고 했던 소년은 지금 10년차 기자가 됐다. 당일 기사 마감 후 한-아프리카 경제협력회의가 열린 신라호텔에서 다음 기사를 취재 중이던 그. 내일신문의 경제부 기자로 있는 박준규(무역 92) 동문을 만났다.


대학생활 = 기자생활
운동권의 막판 전환기였던 90년대 초, 신입생이 된 박준규 동문은 기자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에 맞춰 대학 입학 직후 서울시립대신문사에 들어갔다. 한창 대학신문사나 총학생회 모두 정치적인 성향이 강했던 당시, 우리대학 신문사도 다른 대학신문사와 다르지 않았다. 신문사에서는 항상 세미나 교육이 있었고, 기독교인으로서 관념론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그는 맑스주의의 유물론적인 시각을 갖고 토론은 하는 동기나 선후배들에 맞서 논쟁도 많이 했단다.

이러한 정치적인 논쟁은 신문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신문사와 총학의 이념이 같은지의 여부에 따라 논쟁이 많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총학은 NL(National Liberty, 민중 해방주의 또는 혁명적 민족주의)이었던 반면 신문사는 NL에서 PD(Peopl e’s Democratic, 민중 민주주의 혹은 혁명적 민주주의)로 노선을 전환해 총학과도 많은 갈등이 있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신입생이 되자마자 신문사에 들어간 그의 학창시절은 신문사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템회의, 취재, 교육, 기사마감, 조판. 이것이 박준규 동문의 학창시절 일주일의 생활 패턴이었다. ROTC를 한 탓에 3학년 2학기까지 활동을 했고 퇴임 후에는 1년간 학교에 있으면서 후배들의 교육을 전담했다. 전역한 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대학신문사의 전임기자로 활동했다.

92년 입학해서 2000년 언론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대학신문사에서 계속 글을 쓴 것이다. 그는 “대학신문사에서 어느 정도 트레이닝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입사 후 기자생활이나 글쓰는 것 모두 처음부터 어색하지 않았다. 학교신문사에서의 생활이 상당히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기자생활 = 프로생활
학생시절 기자경험이 직업으로서의 기자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모든 것이 같지만은 않을 터. 그는 학생기자와 직업기자의 가장 다른 점으로 ‘프로정신’을 꼽았다. 하지만 그 ‘프로정신’이 가끔 기자 신변에 위협이 될 때도 있으니 이것은 그가 기자가 된지 얼마 안 되고 나서의 일이다. “김대중 정부 시기 코스닥이 활황이고 한창 벤처붐이 일었을 때 증권 쪽에 출입했다. 당시 벤처 기업에 졸부들이 많았는데, 그런 졸부들 중에서는 이름만 벤처고, 주식을 가지고 부를 만들어서 튀는 이른바 ‘먹튀’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여러 회사 주식을 갖고 장난치는 복권 파는 회사가 있었는데, 걔네들이 깡패조직이었다. 그래서 이를 기사화 한 후 핍박을 많이 받았다. 그 땐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그의 기사로 그 회사에 대한 검찰 조사가 이뤄졌고, 그들의 행태가 사실로 밝혀졌다.

그의 프로정신은 그의 생활에도 녹아있다. 석간신문인 내일신문은 기사 마감시간이 오전 10시 30분이다. 그는 아침 5시에 일어나, 5시 40분쯤 회사에 온다. 회사에 도착하면 6시에 있을 팀 회의 전까지 그날 나온 조간신문을 훑어보고, 6시에 있는 회의에서 당일 쓸 주요기사에 대해서만 간략히 이야기 한다. 그리고 6시 20분, 회의가 끝나면 보통 9시까지 기사를 마감하고, 10시 30분까지 기사를 편집해서 넘긴다. 기사 마감 후에는 오전에 나온 석간용 자료를 분석하고, 조찬 강연이나 컨퍼런스에 참여해 취재한다. “오늘은 정부 고용지표가 나오는데 그런 거 분석해서 쓰는 거지”라고 말하는 박준규씨의 모습에서 10년 차 기자의 연륜이 느껴진다.

하지만 기자는 1년을 하든 10년을 하든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하는 직업. 그는 기자생활 중 가장 힘든 점으로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하는 부담감’을 꼽았다. “각 부처마다 출입하는 기자들이 150명 정도 되는데, 이 사람들이 다 각각 경쟁한다고 봐야한다. 기자들 사이에선 동료 기자들한테 인정받아야 한다는 경쟁심리가 있는데, 이러한 경쟁의 결과가 매일같이 확인이 되니깐 좀 부담이 된다”는 그는 “그래도 부담감이 있는 만큼 재밌는 부분도 많아 힘든 점이 상쇄가 된다”고 한다. 뭐가 그렇게 재밌을까. 그는 “오늘 있는 한-아프리카 경제협력회의 같은 경우도,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의 재무부 장관이 오고, 이외에도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방문하는데 이런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상당히 많다는 것. 위아래 계급고하를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되고 싶다면
그는 기자라는 직업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주체가 사회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아주 훌륭한 직업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기자가, 언론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가 정말 언론인이 되고 싶은 건가’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해볼 것을 당부했다. “기자가 가진 사회적인 지위를 보고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면 아마 상당히 후회할 것이다. 사회에 대한 기자 나름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그는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자가 되면, 기사에 회사의 가치관을 담아내거나 또는 아주 평범한 기사를 쓰거나 입장을 번복하기도 한다”라며 “기자는 기사를 뽑아내는 기계가 아니라 다른 사람 대신 정보를 한번 걸러내는 대리인이자 대표이기에 자신만의 가치관과 함께 편협하지 않은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독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덧붙여 박준규 동문이 ‘기자로서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라 지목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기자 본인의 ‘성실함’이다. 기자의 가치관이 아무리 잘 정립되어 있다 한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 빛을 내지 못한다. ‘성실함’을 바탕으로 한 취재와 취재원 관리가 선행됐을 때, 기자가 가지고 있는 시각이 빛을 보게 된다. 그는 “언론사에 들어갈 때 물론 연줄이 중요하고, 들어가서도 학연, 지연, 종사하고 있는 신문사의 지명도 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취재원을 설득하는 데 위의 요소들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그 이상은 안 된다. 기사의 깊이는 기자의 성실함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성실한 사람 앞에서는 누구도 당하지 못하며, 그런 기자들은 금세 티가 나서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받고, 잘한다”는 박준규 동문은 기자가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처음부터 메이저에 갈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성실함을 바탕으로 실력과 인맥이 갖춰지면 충분히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수 있다”며 마지막 조언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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