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주는 남자



김기택을 달리 호명해야한다면 최소주의자라 부르는 게 합당하리라. 그는 오랫동안 우리가 소외했던 존재들, 키 작은 존재들을 주목해왔다. 그런 점에서 커다란 나무는 그와 참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다.

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크기가 곧 권력이라 믿는다. 숲속의 웅장한 나무는 늘 중심이고, 그것은 우리 시야의 통합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 키 큰 나무는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다.

갈라져 점점 가늘어지고 뒤틀어짐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나무는 계속 갈라진다. 이 갈라짐은 통합에의 반역이다. 그러나 그 반역은 분열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통합을 강요받아 왔지만 새로운 눈으로 보면 오히려 그 반대의 명제가 성립할 수 있다. 보라, 커다란 나뭇가지가 갈라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의 희미한 나뭇결을 볼 수 있지 않은가.

갈라지고 갈라진 틈에서 그는 ‘식물성 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본다. 그것은 곧 혁명이다. 혹자는 숲속 커다란 나무에 대항할, 그 다음 키 큰 나무를 열심히 기르자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권력을 키우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 진정한 혁명으로 가는 길은, 진정으로 소수자를 위하는 길은 제 몸 안에 불을 지르는 일이다.

문득, 창문 밖으로 혁명이 보인다. 혁명이 무엇이냐고? 가을이다! 가을, 제 숨죽이는 나무들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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