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 터키 3) 카파도키아, 파묵칼레

터키의 자연을 처음 보는 이들은 자신이 왜 그곳에 왔는지 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는 이내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을지도 모른다. 실제 눈앞에 펼쳐진 경관에는 감히 어떠한 수식어도 붙이기가 조심스러워진다. 그만큼 터키의 자연은 아름답고 광활하다. 그리고 이국적이다.

해외취재를 위해 터키에 방문한 기자들은 약 일주일 동안 이스탄불과 터키관광의 ‘Big 3’라고 불리는 카파도키아, 파묵칼레, 셀축을 둘러보았다. 네 곳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곳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자신만의 매력을 갖고 있다.

이스탄불은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가득하다. 카파도키아에서는 광활한 지형 위에 솟은 기암괴석들을, 파묵칼레에서는 만년설이 쌓인 듯 한 석회지대에 절로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셀축의 에게해는 맑은 가을하늘보다 더 청명하다. 이처럼 ‘아름답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네 곳의 명소 중에서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깊었던 카파도키아와 파묵칼레에 대한 기억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스타워즈와의 대면

카파도키아는 터키의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이다. 이곳은 독특한 형태의 지형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보기 드문 지형들이 모여 있기 때문일까. 관광객들이 꼽은 카파도키아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낯설다’는 점이다.

이곳의 낯선 매력은 수천만 년에 걸친 지각변동을 통해 만들어졌다. 화산폭발과 함께 분출된 화산재가 쌓여 지층을 형성했지만 굳기가 단단하지 못해 풍화침식에 쉽게 깎이고, 부서지고 말았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의 힘으로 조각된 웅장한 기암괴석들과 그 사이사이에 형성된 다양한 형태의 지형과 바위들이 오늘날 카파도키아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특히, 마치 버섯모양으로 깎아 만든 것 같은 버섯바위들은 이 곳의 ‘대표 아이콘’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카파도키아 이곳저곳에 산재되어 있다.

카파도키아는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지로도 사용됐을 정도로 이국적인 느낌이 강하다. 버섯바위들 사이에서 외계인들과 인간의 숨막히는 혈전이 시작될 것 같고, 깎아내린 듯한 기암절벽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외계 행성에 와있는 듯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카파도키아에 발을 들여놓았던 순간부터 그 곳을 떠날 때까지 기자들의 탄성과 감탄은 쉴 새 없이 지속되었다.


▲ 카파도키아 파노라마와 버섯바위

거대한 지하도시의 가슴 아픈 역사를 찾아

카파도키아의 아름다운 지형에 탄성을 멈추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속에 숨겨진 역사를 듣게 되면 더 큰 충격에 빠지고 만다. 우리가 감탄을 마다하지 않았던 깊은 땅 속에 펼쳐진 ‘20층짜리’ 지하도시와 가파른 절벽 아래에 숨겨진 비밀 교회당이 과거 그곳에서 살던 기독교인들의 희생과 인고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과거 카파도키아는 지리상 이점으로 인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의 중요한 교역로로 이용됐다. 이 과정에서 수도사들이 유입되면서 그들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됐으리라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7~8세기에 아랍의 침입과 함께 기독교 박해가 시작됐다. 기독교인들은 카파도키아의 지형을 이용해, 암벽 위나 계곡 사이, 혹은 지하 동굴을 만들어 은거하며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자신들의 소명을 지켜왔다. 이렇게 기독교 박해를 피해 지하 동굴과 교회당에 은거하며 지낸 사람들의 수가 약 200만 명에 달했고, 지하에 건설된 교회의 수도 1,000개에 육박했다고 하니 그 규모를 가히 상상하기도 힘들다.

카파도키아에서 ‘단체투어’를 하던 중,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았다는 ‘데린구유’ 지하동굴을 둘러보았다. 좁은 입구에 비해 끝없이 펼쳐진 지하로 이어지는 길들과 다양한 용도의 방들은 이를 둘러보는 관광객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그 규모는 동굴을 넘어 ‘지하도시’라 부를만 했다. 부엌, 음식저장고, 동물사육장 등의 생활공간뿐만 아니라 신학교, 세례식 등을 행하는 신앙공간도 마련해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은거생활 중에도 당시 기독교인들이 종교생활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 파묵칼레 석회언덕

속지마세요, 눈이 아니라 석회지대입니다!

터키 남서부의 ‘데니즐리’라는 도시에 위치한 파묵칼레는 ‘석회석으로 이뤄진 산’을 지칭한다. 파묵칼레는 터키어로 ‘목화의 성(Cotton Castle)’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름 그대로 석회산이 마치 목화가 성을 이룬 것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파묵칼레는 산 정상에서부터 온천수가 흘러내려 석회층 전체를 타고 흐르는데 이 온천수에 석회석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많이 섞여있어 오늘날 파묵칼레의 석회층을 형성하게 됐다.

언덕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높고, 산이라고 하기엔 다소 낮은 파묵칼레는 단순히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서는 눈인지 석회석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새하얗다. 여기에 화창한 날씨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햇빛에 반사된 석회석은 더욱 새하얀 빛을 발한다. 눈이 부셔 언덕 전체를 제대로 둘러보기 힘들 정도라고 하면 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기자들이 파묵칼레를 방문한 때는 이른 아침이었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석회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물웅덩이마다 사람들로 가득했다. 기껏해야 물이 무릎정도까지밖에 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수영을 하겠다는 건지 당당히 수영복을 챙겨 입고 온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실제로 본 석회산의 모습은 마치 계단식 논을 보는 것 같았다. 자로 대고 정확히 평면으로 잘라 놓은 듯한 큰 웅덩이들마다 옥빛의 석회수가 가득 차있는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한 파묵칼레는 1년 365일 내내 귀중한 자연의 보고를 보기 위해 모인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필연적으로 오염과 파괴가 뒤따르는 법이다. 파묵칼레에 방문한 사람들이 몸에 바른 자외선 차단제나 그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등이 석회에 남아 이끼를 번식시켰다. 이로 인해 몇몇 석회는 본연의 흰 자태를 잃고 까맣게 변색되기도 했다. 결국 파묵칼레를 보존하기 위한 터키 당국의 결정으로 현재는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에만 석회지대에 많은 양의 온천수를 흘려보내고 있다. 파묵칼레 관광의 백미가 바로 언덕을 흘러내려 웅덩이에 고인 온천수를 밟는 것임을 감안하면 관광객의 입장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제재 조치들이 아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관광객들은 과거에는 언덕을 오를 때 신발을 신고 올라갈 수 있었으나 파묵칼레 보존 방안으로 이제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올라가야 한다. 이 또한 석회층을 보호하려는 정책인데, 오히려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파묵칼레만의 매력 중 하나가 되었다.

기자들이 여행 중에 만난 터키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있었다. 모두 ‘여유롭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인들처럼 일 처리를 ‘빨리빨리’ 하려하지 않았고, 주위 사람들을 ‘이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기자들은 그 이유가 터키의 아름다운 ‘자연’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의 광활한 자연과 문화유산을 보고 있는 동안, 일상에 조급증을 갖고 있던 우리들도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여유롭고 안정적으로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터키를 생각하고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고한다. 터키에 가라. 그리고 그 광활한 대자연과 빛나는 문화유산을 느껴라. 그곳은 찬란한 경관과 여유를 느낄 줄 아는 멋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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