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주는 남자


‘소리’에 대한 인식의 지평, 이것은 오늘날 시의 화두이다. 바람이 부는 날의 풍경을 읊고 있는 강인한의 시에서 시적 주체가 바라보는 풍경이라곤 “싹둑싹둑 가지를 잘린”, 또는 “파닥파닥” 입을 피우는 나무 그 이상이 아니다.

아마도 그 조차도 듣지 못했을 이 ‘싹둑싹둑’이나 ‘파닥파닥’이란 의성어들은 이 시에서도 이미지에 가려진 채 생명이 다 한 언어로 등장할 따름이다. 즉 이러한 언어들은 연신 바위를 타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작성된 ‘악보 속 음표’와 같아서, 파도는 소리가 아닌 하나의 형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해변에서 떠오른 그 음표들은 특정한 조건들을 충족시킬 때만이 유사한 소리를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악보 속 음표’는 실제 바닷가의 파도 소리와는 다른 가상의 소리를 전제하며 성립될 수밖에 없다. 이는 여전히 재현의 문제와 관계됨을 뜻하는 것인데, 그렇지만 이러한 방식의 이미지들을 꼭 낮은 방식의 것이라 평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거기엔 어떤 소외감 혹은 뿌리 깊은 절망 등이 담기기 마련인데, 강인한은 주로 ‘회상’을 통하여 이를 드러낸다. 강인한의 시집 ??입술??은 ‘이미지’의 문제를 그 중심에 놓고, 감각의 우위에 대한 치열한 탐구를 보여준다. 이러한 탐구는 시의 추상성을 구체화하는 노력, 혹은 구체성을 추상화 하려는 노력과 맞물려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감각의 탐구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과제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