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을 활용한 역사 수업이 점점 늘고 있다. 영상 매체를 활용한 역사 교육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뜻일 게다. 실제로 대학의 역사 강의에서 영화를 활용한 수업이 인기가 많은 것도 이 같은 추세를 반영 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영화가 단지 눈요깃감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모 대학의 인기 있는 역사 교양 과목의 경우, 주어진 시간 동안 역사 영화를 감상한 후, 학생들에게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라고 주문하는 것이 고작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만약 이러한 학습 방식이 한 학기 동안 계속 지속된다면, 학기 초에 학생들이 지녔던 적극적인 관심은 상처로 돌아오고 말 것이다. 따라서 거듭 강조해야 할 것은, 극장에서의 영화 감상과 교실에서의 영화 학습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영화를 활용한 역사 교육의 경우, 강의자가 영화 매체의 활용법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그야말로 적당히 ‘시간 떼우기’과목이라는 비난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를 활용한 역사 교육,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자리를 빌려 중요한 세 가지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영화를 활용한 역사 교육은 강의에 참석하는 수업 주체, 곧 수강 주체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근대 시기 역사 교육의 관점에서는 수강 주체보다는 오히려 강의 주체가 유일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노 교수님의 옛 이야기조차도 살이 되고 피가 되리라고 기대하며 우직하게 견뎌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의 종말’이 선고된 그야말로 역사학의 위기의 시대를 버티고 있다. 역사학에 관한 관심의 부재 상황에서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국면인 것이다. 그와 더불어 수강생들의 관심이 확연히 달라졌다.

교양 역사 과목의 경우,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와 상관없다고 생각되는 옛날이야기에는 별다른 애정 없이 피곤한 몸을 추스르는 데 급급할 따름이다. 만일 이러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양 역사 과목이 수행돼야 한다면, 기존의 수업 방식은 반드시 재고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대학생은 특정한 주제의 문자 텍스트보다는 영상 텍스트를 가장 먼저 소비하는 영상세대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대중 매체, 곧 영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대안적인 수업 방식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동영상을 활용한 역사 수업에 대한 철저한 고민과 적극적인 해법의 마련이 시급하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를 활용한 역사 교육은 교과목이 과연 ‘누구를 위한 강좌인가’라는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볼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제기한다.


둘째, 영화를 활용한 역사 교육은 영상 세대의 특징을 갖는 학생들에 맞춰 적절한 영화 선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해당 주제와 전연 상관없거나 뚜렷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지 못한 영화가 선정될 경우, 영상은 학생들의 잠을 재촉하고 그들로부터 소외 아닌 소외를 당하고 만다. 따라서 역사적 풍경을 오롯이 담고 있으면서도 학생들의 취향에 걸맞은 역사 영화가 신중하게 선정될 때, 기대되는 학습 효과는 극대화 될 수 있다. 우리 대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서양문화의 사적 이해〉강좌의 경우, 서양의 중세 문화를 가르칠 때,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역사 영화 〈장미의 이름〉(1986)을 함께 감상하고 분석한다. 주지하다시피, 이 영화는 1980년 움베르토 에코가 발표한 역사 소설 〈장미의 이름〉에 입각해서 제작된 영화로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수작 중의 수작이다.

그러나 중세사 수업 시간에 이 영화가 특별히 선정된 이유는 영화의 높은 완성도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한 편의 영화가 재현해 내는 중세의 풍경이 대단히 참신할 뿐만 아니라 그 때까지 역사가들이 제대로 조명해 내지 못하던 또 다른 역사적 진실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올바르게 선정된 역사 영화를 활용한 역사 교육은 영화 속에 재현된 과거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풍경들과 만날 수 있는 극적인 계기를 제공해 준다.

셋째, 영화를 활용한 역사 교육은 수강 주체와 적합한 영화 선정 작업에 관한 깊은 성찰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역사 영화 속에 재현된 독특한 역사의 풍경을 섬세하게 분석해내야 한다.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역사 교실에서의 영화 분석은 반드시 올바른 문제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동시에 좀 더 깊이 있는 영화 감상을 위해서 중요한 관점 포인트를 세 가지 정도 제시해 주는 것도 유익한 방법 중 하나다. 다시 한 번 더 역사 수업에서 중세 시대를 재현한 영화 〈장미의 이름〉을 활용할 경우를 예로 들자면, 강의자는 먼저 학계에 정설로 통용되어 오는 중세관, 곧 암흑기의 중세 담론을 간단히 설명한 다음, 이 영화가 담아낸 ‘새로운 중세’란 과연 어떤 대목에서 찾을 수 있는지에 주시하도록 지도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학계의 정설인 어두운 중세가 절반의 진실이라면, 나머지 절반의 중세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라는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런 다음, 구체적으로 세 가지 관점 포인트, 첫째, 인간의 재발견, 둘째, 공간의 재구성, 셋째, 장미의 재조명을 제시한 다음, 영화를 본격적으로 감상한다. 이후 영화를 모두 감상한 뒤, 강의자는 영화가 재현한 독특한 중세의 풍경을 앞서 제시한 세 가지를 중심으로 설명해 나간다. 그것을 간단히 정리하면, 〈장미의 이름〉은, 학계의 정설과는 달리,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우베르티노와 윌리암, 그리고 아드소를 통해 다양한 인간(들)이 공존한 시대, 수도원과 장서관, 그리고 마을을 통해 다양한 공간(들)이 공존한 시대, 그리고 장미의 상징성을 통해 다양한 사랑(들)이 공존한 시대로 중세를 새롭게 재현해 낸다. 그 결과, 중세는 어두운 시대가 아니라 빛과 어둠이 공존하며 다양하게 변주되던 시대, 곧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대에 공존하는 시대임이 밝히 드러난다. 이런 의미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중세 시대 사람들의 망탈리테를 정확히 짚고 있다’는 독일의 중세사학자 푸어만의 평가는 곱씹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덧붙여, 현재 역사학의 위기는 어쩌면 ‘역사 교육의 위기’이다. 변화를 다루는 학문인 역사학 자체가 오히려 변화해야 할 시대에 우리는 들어서 있다. 그러한 시대적 변화는 동시에 역사 교육의 방법론의 혁신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적절히 대응해 나가는 것이 역사학의 책무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교의 역사 교양 교육의 새로운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에만 비로소 닫힌 역사 교육에서 열린 역사 교육으로의 적극적인 변신이 가능해 질 수 있다. 영화를 활용한 탈근대적 역사 교육을 통해 역사학의 귀환을 환영하는 신시대의 도래가 조금이나마 앞당겨질 수 있지 않을까.

최용찬
독일 베를린 기술대학교 박사, 영화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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