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 주는 남자


시(詩)는 가급적 오후 다섯 시쯤 읽으시라. 이때가 기억을 가장 내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으면 당신은 기억의 심연에 빠져 허우적거릴 지도 모른다. 오후 다섯 시, 하늘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시를 읽으시라.

오후 다섯 시가 매력적인 까닭은 낮을 지배했던 빛과 밤을 지배할 어둠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빛이 미래를 기약해줄 지는 모르나 과거를 잊게 하기 쉽다. 어둠은 기억의 깊이를 더해주지만 슬픔을 강요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기철의 시는 오후 다섯 시에 시를 읽기 위한 독자를 위해 쓰였는지도 모른다. 좥사금피리좦는 기억을 떠올려보는 모범답안의 하나처럼 보인다.

이 시는 분명 유년의 추억에 바쳐졌을 것이다. 물론 추억을 그린 시들은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적잖은 시들이 기억의 어두운 풍경을 그리고 있음에 반해, 이 시는 기억의 균형을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전기철은 언덕이 있는 겨울의 풍경을 바라보며 유년을 추억한다. 저 ‘아이들’이 불러왔을 그 기억 속의 시간을 되짚으며 ‘대나무’처럼 슬프고, ‘겨울 냇가’처럼 반짝이던 시절을 되짚는다.

시인은 어디선가 고백한 적 있다, 자신이 버린 사금피리를 어머니가 삼켰다고! 슬픈 곡조를 만들어냈을 사금피리를, 아니 유년의 추억을 되짚으면서도 그 균형을 버리지 않은 점이야말로 이 시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다. 오후 다섯 시에는 시를 읽자, 시가 아니고 기억이면 또 어떠랴.

박성필(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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