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리더십

지난달 29일과 30일 양일간 세계여성리더십컨퍼런스가 한국일보와 여성가족부의 공동 주최로 개최됐다. 500여 명의 참가자가 참석한 가운데,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국무장관, 이자벨 아길레라 전 Google 스페인·포르투갈 CEO, 루시 P. 마커스 마커스 벤처 컨설팅 CEO 등이 연사로 나섰다. 세계는 왜 여성을 주목하고 있는가, 여성이 이 왜 시대 담론이 되고 있는지 진지한 기조연설과 함께 토론이 진행됐다. 이번 행사에서 강조된 여성과 여성리더십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자. -편집자 주


부각되고 있는 여성적 리더십

박지성, 유재석, 박칼린. 우리들에게 익숙하면서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이 셋의 공통점은 소통을 중시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박지성은 지난 2008년 월드컵을 통해 ‘거스 히딩크의 영향을 받은 까닭인지 선배의 위엄을 앞세운 것이 아니라 ‘소통’을 중시하여, 선배들의 능력을 끌어내줬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유재석은 ‘상대방에 대한 무한한 배려와 겸손’으로 최고 MC의 반열에 올라 현재 국민MC로 불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박칼린 음악감독은 얼마 전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음악에 대한 ‘압도적인 열정’으로 프로젝트 구성원 누구하나 내치지 않고 개개인의 능력을 눈뜨게 만들어 시청자들에게 멋진 하모니를 선보였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란 언제 어디서나 중심을 잃지 않고 뛰어난 공감을 보여주며 자신을 표현하는 힘을 말한다. 이는 귄위를 내세우는 전통적 리더십과는 달리 탈권위적이며, 소통을 중심으로 구성원들의 참여와 능력을 이끌어내며 정보화 시대의 효과적인 리더십으로 각광받고 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에서 제시되는 리더십의 스타일에는 여성성이 강조된다. 여성적 리더십은 ‘서번트 리더십’, ‘코치형 리더십’, ‘섬기는 리더십’ 등으로 불리는 민주적인 리더십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때의 리더는 부하의 개인적 성장, 정신적 성숙 및 전문분야에서의 발전을 위한 기회와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세계여성리더십컨퍼런스에서도 우리 사회가 정보화시대로 넘어가면서 참여를 기초로 하는 여성적 리더십 스타일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왔다. 기조연설자로 참석한 라이스 전 미국국무장관은 30대 여성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한 질문에 여성적 리더십으로 해결하라는 조언을 했다. “우선 자신의 의사표현을 확실하고 당당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상대방에게 다짜고짜 이것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기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공감대를 형성하십시오. 반응은 그 이후에 요구해도 늦지 않습니다.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공감대 형성이 선결 과제입니다”

또 다른 기조연설자 시플리 전 뉴질랜드 총리도 토론 중 청중이 감성적인 여성에 대한 우려의 시각을 내비치자 그것이 일하는 데에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여성들은 더 감성적입니다. 하지만 감성적이라고 해서 객관성이 결여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명감과 열정이 있기 때문에 더욱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40년이 되도록 유리천장을 뚫지 못하는 여성들

세계여성리더십컨퍼런스 세션2는 ‘아시아 여성이여 유리천장을 깨자’라는 주제를 갖고 진행됐다. 최근 여성적 리더십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여성들은 리더의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 많은 역경(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란 1970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사용한 말로, 여성의 성취도나 장점과 관계없이 기업 고위직에 오르는 것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비유한 용어다. 미국 정부는 이때부터 유리천장 위원회를 결성해 여성 차별을 해소하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제도적으로 독려했지만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유리천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유리천장의 요소 중 하나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회사의 전반적인 운영에 관심을 갖는 반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당면한 ‘일’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의 결함은 성별의 특성상 남성 또한 권위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서 오는 결함과 비슷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회사에서의 다양성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직장 내에 여성을 배척하는 문화와 남성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게 되는 상황이다. 물론, 사회적인 시각이 많이 변화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진실 여부가 궁금해진다. 다음은 40여명의 여성관리직의 인터뷰를 녹취해 정리한 2004년 출판된 《유리천장 깨뜨리기》라는 책의 기록들이다.

똑같은 레벨에서 덜 중요한 일만 시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데 예를 들어서 어떤 여자가 수출업무에서 뭐 별거 아닌 데 아프리카 어디를 뚫었어요. 그런데 뚫고 보니까 그게 굉장한 시장인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어 너 수고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그 일을 맡기는 좀 힘들지 않겠냐 그러면서 남자한테 맡기는 식이에요. 여자가 다 뚫어놨는데 이제 그걸 책임지고 키우고 관리하는 건 못 맡기겠다 식인 거죠. 아무래도 윗사람들의 인식의 문제예요. 사실 요새 여성 인력을 키워야 된다 어쩐다 하지만 기업은 그럴 필요를 못 느껴요. 그냥 하던 대로 하면 편하고 잘 굴러가거든요. (D국내대기업 계열사 과장)

대리되는데 연한이 남녀가 틀린데, 물어보니 군대 때문이래요. 그런데 군대 안 갔다 온 남자도 그런 거예요. 항의를 했죠. 직속상사한테 하니까 부장한테 가라 그러고 부장은 임원에게 가라 그러고. 계속 끝까지 항의를 했는데, 문제는 여자가 너무 소수인데다 낙하산이 많아서 의견이 모아지지가 않고 힘이 없어요. 그러다가 내가 미국으로 가게 되는 바람에 그냥 유야무야된 일이 있었죠. (H다국적기업 상무)

여자 상사를 좋아하지 않죠. 앞길이 막히니까. 줄이 없잖아요. 바람막이 역할을 못해주는 상사 밑에 누가 있으려고 하겠어요. (N다국적기업 이사)

가정과 직업 병행의 딜레마, 여성할당제 등의 제도적 변화가 해결방안이 될 것인가

최근 ‘출산파업(베이비스트라이크)’이 확산된다고 한다. 출산파업은 사회경제적 이유로 아이 낳기를 꺼려하는 세태를 일컫는 말이다.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09년 출생통계 결과’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태어난 신생아 수는 모두 44만 5000명으로 2008년보다 2만 1000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역시 1.15명으로 2008년에 비해 0.04명 감소했다.

해마다 출산율이 감소하는 것은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남에 따라 결혼과 자녀교육보다는 개인의 성취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성들이 임신과 육아에 대해 느끼는 중압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제도적으로 여성의 고용기회가 늘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해지고 있다. 여성을 일정비율 채용하는 여성고용할당제는 현재 정계와 교육계에 적용되고 있으나 재계에는 적용되고 있지 않다. 세계여성리더십컨퍼런스의 패널로 참여한 서울대 정진화 교수는 “중국과 달리 한국과 일본은 노동시장에서 여성 지위가 상당히 낮으며 참여율 및 고용률이 낮고 임금격차가 크다” 며 “한 가지 대안은 공공분야에서의 할당제 도입이다. 지금 내가 서울대학에 몸담고 있는데, 쿼터제가 5년가량 지속돼 교수진에 여성 비율이 많아 졌다”며 “민간분야의 할당제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만약 도입된다면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패널로 나선 홍콩 입법위원 에밀리라우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할당제가 없다면, 여성들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의식 때문에 할당제에 반대한다”며 “할당제가 있는 국가들을 존중하지만 여성들끼리 싸워 자리를 얻기보다는 남성들과 정당하게 싸워서 진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여성 인재에 대한 긍정성은 증명되고 있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매킨지가 지난 2007년부터 해마다 발표하고 있는 <위민 매터>(Women Matter)라는 보고서는 이를 잘 뒷받침한다. 지난 9월 발표된 ‘2010년 보고서’에는 2007~2009년 동안 이사회에 여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기업과 이사회 구성원 가운데 여성이 한 명도 없는 기업들의 자기자본이익률과 세전이익 등을 비교한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조사 결과, 여성의 이사회 참여 비율이 높은 상위 25% 기업의 자기자본수익률은 평균 22%였다. 이사회가 남성들만으로 이뤄진 기업(15%)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세전이익 격차도 컸다. 여성인력의 고용의 대안으로 여성할당제가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여성적 리더십이 통하는 이 시대, 여성 인력의 효용성은 인정받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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