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것이지만 어색한 것이 있다. 바로 국악이다. 우리나라의 음악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국악보다 서양음악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바로 여기 국악을 자신의 뿌리로, 부모로 생각하고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주인공은 국악피아니스트 임동창(음악 85)동문이다. 임동창 동문을 만나 그의 음악과 인생스토리를 들어봤다.

삶과 같은 음악

임동창 동문에게 음악가는 직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에게 음악이란 삶의 재미이고, 이유이다. 그는 “삶과 음악이 하나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음악의 전문적 수준과 삶의 수준이 맞지 않으면 음악가는 단순한 직업일 뿐이다. 음악에서 무언가를 깨달았으면 그것이 삶에 반영돼야 하고 반대로 삶에서 무언가를 깨달았으면 그것이 음악에 반영돼야 한다. 이런 그의 음악관은 한편으로 고민거리가 되기도 한다. 임동창 동문은 “항상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이 있다”며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만큼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 고민한다고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음악에 대한 문제는 실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보다 사람들이 내 음악에 대해 어떻게 평가를 내리고 판단을 하게 될까라는 두려움이다”고 말하는 그.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반응과 평가가 좋지 않다고 좌절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한다”며 음악에 대한 멈추지 않는 열정을 보였다.

음악을 위한 파란만장 일대기

음악을 하기위해 임동창 동문이 걸어온 길은 한마디로 파란만장하다. 임동창 동문은 “나 때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 특히 남자는”이라고 말한다. 그가 살았던 1960년대에 음악을 하면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는 그렇지 못했다. “하도 가난해서 남들이 밥 먹듯이 밥을 굶어가면서 음악을 했다”고 말하는 그.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어버린다’라는 말처럼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불우한 환경은 오히려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갖게 해주었다. 그의 가난이 음악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계속 이어졌다. 임동창 동문에게 학교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학교는 그가 궁금해하고 고민하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7살 때부터 혼자서 작곡을 공부한 그는 좋아하는 음악에 매진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는 그렇게 혼자서 공부를 하다가 돌연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됐다. “오롯한 내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내 음악이 나오겠어”라며 자신을 아는 방법으로 참선을 선택한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무모한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는 이 시기는 임동창 동문이 지금의 국악피아니스트가 되게 한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 그는 그때 접했던 국악을 잊을 수 없어 음악을 계속하게 된다면 반드시 국악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군입대를 하면서 임동창 동문의 절에서의 생활은 끝이 났다.

그 뒤 줄곧 혼자서 공부했던 임동창 동문은 당시 우리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쳤던 최동선 교수에게 음악을 배우게 됐고 그의 권유로 1985년에 29살 늦깎이 음대생이 됐다. 입학 전에 자신의 길을 국악으로 정한 그가 대학시절에 목표로 삼은 것은 ‘양악 완전정복’이었다. 서양 사람들이 어떻게 음악을 하는지 알아야 국악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음악 공부에 전념한 그는 졸업 후 진정한 국악의 길로 접어들어 지금의 국악피아니스트가 됐다. 김덕수 사물놀이와 함께 피아노를 치던 모습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10년 전까지 TV와 공연장에서 그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임동창 동문은 돌연 세상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졌고 작년 창작곡집 ‘임동창의 풍류, 허튼가락’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전통음악의 DNA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현대인들이 자연스럽고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음악’이라고 표현한다. 쉽게, 그리고 편안하게 그려낸 그의 음악은 마치 그의 인생과 닮아 있었다.

인생의 스승

임동창 동문은 11명의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의 제자는 중학생부터 30대 성인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일반적인 사제 관계라면 그의 제자들은 국악을 배우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에게 국악이 아닌 삶의 태도와 정신을 배운다. 임동창 동문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인생의 스승이다.

강주호(16)군은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제가 무엇을 배우고 있고 무엇을 배워야하는지 몰랐어요”라고 말한다. 임동창 동문을 만나기 전까지 마냥 어렸던 소년은 그를 만나고 자신의 진정한 꿈을 찾게 됐다. “농사를 지으면서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스승이 되고 싶다”며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소년. 아직은 어리지만 임동창 동문에게 배운 것을 토대로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후배들에게 전하는 그의 조언

임동창 동문은 후배들에게 “솔직하게 살라”고 조언을 했다. 그가 말하는 솔직함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을 다 보여줘 떠벌리라는 것이 아니다. 임동창 동문은 “안에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밖으로 표출해서 실천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 속에서 뭔가를 원하는데 겉으로 표출을 하지 않고 숨기면 사람들 간의 오해가 생겨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온다고 말한다. 후배들이 진실하게 살며 자신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길 바라는 선배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임동창 동문은 어린 시절부터 쉰이 넘는 지금까지 음악 한길만 보고 달려왔다. 국악, 클래식, 재즈에 이르기까지 그가 접한 음악은 방대하다. 그는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음악은 하늘이 나에게 내준 숙제였다”며 “오십이 넘도록 숙제를 열심히 했으니 이제는 나가서 놀 시간이지”라며 농담을 건넸다.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음악은 이제부터 그가 해나갈 음악을 위한 예습이었다는 그. 임동창 동문은 이제 예습을 끝내고 자율학습을 통해 그만의 음악을 다시 써나갈 예정이다. 그의 마음과 손끝에서 펼쳐질 국악의 향연. 임동창 동문이 우리에게 어떤 음악을 선사할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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