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주는 남자

사막에 대해 아는 바가 조금 있다. 아마도 작열하는 미래 황폐한 미래를 위해 이곳은 다른 곳보다 망각이 먼저 오고 가장 오래 머물고 망각의 혀를 사랑하며 느린 태양의 행진을 즐긴다. 오직 내비게이션을 믿고 달리는 태양이 지배하는 사막의 나날을 위해 록커들이 불렀던 노래를 심장에 등꽃처럼 단 턴테이블을 소금벽이 있는 동굴에 걸어두고 싶다. 어느 타임머신이 저 노래를 들었으면 한다. 그 노래는 오직 타임머신만의 미래이므로.
- 허수경, 「사막에 그린 얼굴 2008」 중에서

흘러가는 시간들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매일 서시(序詩)만을 쓰고 또 읽어도 좋으리라. 지금처럼 새롭게 출발하는 시기라면 그러한 일은 더욱 의미를 가질 수 있으리라. 이러한 자리에서 허수경의 시를 만날 수 있어서 즐겁다. 아마도 허수경은 이 시를 통해 시인은 ‘시간’이 갖는 의미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그녀는 우리를 저 먼 사막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왜 하필 사막이었을까? 그녀는 그곳을 “다른 곳보다 망각이 먼저 오고 가장 오래 머물고 망각의 혀를 사랑하”는 공간이라 말하고 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잊음으로써 새로운 것을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그 무언가를 온전히 잊고 살아가기보다는 그 기억 ‘안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최근의 적지 않은 철학자들이 반복이나 차연의 개념을 강조해온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일 것이다.

이 시에서 허수경은 ‘어느 타임머신’이 노래를 들었으면 한다고, 왜냐하면 “그 노래는 오직 타임머신의 미래”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늘 우리가 다시 쓰고 또 잊을 수많은 서시들은 오늘의 노래이며 또한 미래의 노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또한 그것은 온전히 과거의 노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현재를 사랑해야 할 이유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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