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는 ‘지혜 또는 진리’라는 뜻입니다.

카이스트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지난 7일, 박 모(19) 군은 인천시 만수동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박 모 군을 포함해 카이스트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올해 들어 네 번째다. 일련의 사건들과 관련해 카이스트의 ‘무한 경쟁’ 시스템이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카이스트의 ‘징벌적 수업료’ 제도는 쉽게 말해 학점이 떨어지면 수업료를 내야하는 제도다. 학점 평점이 3.0 이상인 학생은 수업료가 면제되지만, 3.0 미만인 학생은 0.01점당 6만원 상당의 수업료를 내야한다. 또한 평점이 2.0 미만이면 수업료 600만원과 기성회비 150만원을 전부 내야 한다. 투신자살한 박 모 군은 평소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학점 관리가 어렵다는 고민을 자주 털어놨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카이스트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가 오히려 학생들에게 ‘무분별한 경쟁만을 강요’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 사회에 만연한 ‘무한 경쟁’ 풍조 또한 방관하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물론 경쟁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한국전쟁 이후 침체됐던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기적’으로 불릴 수 있었던 원동력도 산업화를 통한 세계 여러 나라와의 경쟁에 있었다. 이제 경쟁이 발전을 부르고, 비경쟁이 도태를 부른다는 것은 통념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경쟁이 사회는 물론 대학생, 고등학교 입시생, 심지어 유치원생에게도 일률적으로 강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유치원생도 선행학습을 통해 또래 아이들과 경쟁한다. 어떤 학부모는 외국어 학습을 위해 어린아이들을 외국으로 유학보내기도 한다. 모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일종의 전략인 것이다. 하지만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 승자는 마땅히 경쟁에서 이긴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패자 또한 결과에 승복하고 그 의미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러한 패자를 무자비하게 방치하기만 할 뿐, 재도전의 기회는 충분히 제공하지 않고 있다. ‘무한 경쟁’을 강요만 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수많은 패자들이 자신을 비관한 채 목숨을 끊는 대한민국 현실은 지나친 경쟁 구도가 서서히 한계를 보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에 급부상하고 있는 ‘핀란드 교육’은 이런 대한민국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핀란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보다 못하는 학생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는 평등주의적 교육 시스템을 고수해왔다. 평등주의적 교육이 학생들의 성적을 하향평준화 시키지 않을까하는 우려와는 달리 핀란드 학생들은 OECD 주관 국제학업성취도 평가 PISA에서 최고 성적을 받았다.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핀란드 교육이 ‘줄 세우기’식이 아닌 ‘함께 가기’식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쟁’의 가치보다 ‘협동’의 시너지 효과가 더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카이스트의 ‘징벌적 수업료’ 제도는 잠정적 폐지라는 결말을 맞았다. 패자를 배려하지 않는 이러한 시스템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다. 좀 더 패자를 위한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는 것. 그것이 현재 우리사회에 만연해있는 ‘무한 경쟁’ 풍조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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