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주제, 다른 생각 동상이몽


‘결혼이란 해도 후회고 안 해도 후회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말이다. 그래서 그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또 실제로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같은 생각을 가졌으나 다르게 행동한 이도 있다. 바로 소크라테스이다. 그는 후회하더라도 결혼은 해보고 후회하겠노라고 했단다. 그렇게 결혼한 사람이 그 유명한 악처.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착한 여자를 만나면 행복할 것이고 자신처럼 악처를 만나면 철학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키에르케고르의 주장이 유효한 것일까? 수많은 커플들이 축복을 받으며 백년가약을 맺는가하면, 한쪽에서는 영원할 것만 같던 행복을 청산하고 상처만 입은 채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기도 한다. OECD 국가 중 이혼율 2위라는 불명예는 우리나라에 결혼을 후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혼’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결혼해도 괜찮아」와 박진진씨의 「싱글, 오블라디 오블라다」를 통해 결혼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느껴보자.

결혼은 둘만의 나라를 만드는 행위

<결혼해도 괜찮아>는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원작소설을 쓴 작가의 두 번째 자전적 이야기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위한 이민을 국토안보부로부터 승인받기까지 10개월 동안의 삶을 그렸다. 둘은 힘든 이혼 과정을 겪으며 마음의 상처를 입은 탓에 서로 사랑하고, 영원한 정절을 맹세하면서도 결혼만큼은 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호주 시민권자인 남자친구가 미국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구류되고 결혼 혹은 영구추방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몰리게 되며 상황은 바뀌었다. 결혼을 해서 합법적인 비자를 받지 않으면 영원히 입국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녀는 결혼에 대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연인들은 결혼을 통해 ‘둘만의 작고 고립된 나라’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들은 제 3자는 참견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문화, 자신들만의 언어, 자신들만의 도덕법규를 만든다. 모든 권위주의적 세력의 우선적인 목표는 강요, 교화, 위협 등을 통해 대중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연인, 혹은 가족은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태생적으로 위험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초기 기독교에서는 결혼을 버리고 금욕을 택하라고 지시했다. 공산주의자들 역시 결혼을 통제하려고 했다. 과거 미국 노예들에게는 결혼의 자유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 결혼했다. 집단에 반발하고, 대중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한 사람만 선택하는 일을 계속했다. 많은 이들이 특별한 한 사람과의 ‘친밀감’을 원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정치 세력들은 이 욕구를 억누르려고 했으나 결국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들은 법적으로,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다른 영혼과 연결되고 싶은 권리를 사람들이 계속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들 때문에 둘만의 친밀감을 계속 갈망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 미스터리를 완전히 풀지 못했다.

분명 결혼 후 많은 상황들이 싱글, 즉 독신으로 있을 때와는 다르게 전개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점을 감수하더라도 연인과의 ‘친밀감’을 갈망하는 것은 누구도 막지 못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이유로 결혼에 대한 고민은 특별한 한 사람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 앞에서 무너진다고 봤다. 싱글뿐 아니라 이혼의 아픔을 딛고 새 출발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시 생각해볼만한 부분이다.

결혼을 ‘안’하는 사람들

언젠가부터 ‘골드미스’라는 단어가 각종 매체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골드미스란, 30대가 넘은 여성 중 결혼과 아이에게 묶여있지 않은 고소득 전문직 여성을 뜻한다. 그녀들은 맞선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갖고 있다. 나이가 많은 대신 탄탄한 직장과 높은 연봉, 적금 통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골드미스’라는 말을 통해 그녀들은 더 이상 노처녀 혹은 올드미스라 불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골드미스’를 오직 결혼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사회적 시선에 불만을 품는다. 그녀들에게 부족한 건 결혼뿐이라고 치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골드미스 같은 것은 없는지도 모른다. 그저 평균적으로 볼 때 남들보다 조금 더 이루어 놓은 것이 많은 비혼 여성이 있을 뿐. 그들은 살면서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혹은 앞으로도 별 생각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미혼(未婚)’이라는 단어 대신 ‘비혼(非婚)’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여성들이 비혼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사회는 결혼한 여자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요구한다. 여자들은 결혼 후 평생 집안일과 살림살이로 남은 인생을 쓰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자신의 일을 가지면 되지 않겠느냐고? 대한민국에서 워킹맘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곁에서 한번이라도 지켜본다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워킹맘은 단지 자신의 일이 있는 기혼여성이 아니다. 일도 하고 가정도 건사하고 아이들도 키워내야 하는 ‘슈퍼우먼’을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이 결혼이라는 선택 뒤에 따라 오는 것이라면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어 봄직하다. 단지 사랑하니까, 하고 결혼하기에는 이에 따르는 희생과 부수적인 책임이 너무나 크다.

어떤 선택을 해도 기회비용은 존재

결혼과 독신생활 모두 각각의 장단점은 존재한다. 결혼을 통해 얻는 소중한 가족과 소속감은 큰 축복이지만 개인의 자유가 어느 정도 구속받게 된다. 반대로 독신생활은 비교적 자유롭고 가족에 대한 책임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드는 외로움을 견디기란 쉽지 않다. 결국, 결혼생활과 독신생활은 어느 쪽에 더 행복의 가중치를 두느냐에 따른 개인의 선택에 관련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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