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오후의 나른함 때문이었을는지 모른다. 어느 월요일 오후, 자존심에 대해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유달리 빛나던 햇살이 뒷목을 쪼아댔다. 그리고 이내 생각은 저런 햇살 아래라면 죽어도 좋겠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참 오랜만에 자살에 대해 생각한 날이었다. 혹 나는 그때 산책로 옆쪽에 피어있던 목련을 보았을는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상념에 빠져들었다. 세상이 어두워진 것처럼 느껴지자 그녀가 보였다. 은주!

순전히 내 멋대로의 생각이지만 아마도 저 ‘은주’라는 이름은 숨을 은(隱), 집 주(宙)라는 글자로 이루어져있으리라. 시인의 표현대로 “사람들 손잡아 주느라 닳고 닳은”, 그리하여 어느새 제 무늬를 잃어버린 그녀. 나는 그날 어둠 속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때로 우주처럼 아득해보였고, 때로 꽃처럼 아름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아둔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를 비웃으려던 찰나, 그 얼굴에서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삶, 어쩌면 그것은 “파란만장 푸른 잎물결 속”으로 “이름”을 지우는 일 아니겠는가. ‘우주가 그렇게 아둔한 존재였다니’ 생각하자 이내 마음이 편해졌다. 이내 그 아둔한 세계로 빠져들고 싶어졌다. 문득 우리네 삶도 은주처럼, 혹은 우주처럼 제 문양을 지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라며. 삶? 어쩌면 그건 어딘가를 맴돌다 돌아가고, 그렇게 닳고 닳아가는 것인지도.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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