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ITAS

언제부턴가 유전자 지문 수사기법을 이용해 범인을 찾아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인기 있는 미국 드라마 중 하나인 CSI(Crime Scene Investigation)에서는 범인이 남긴 흔적을 통해 그들을 추적하는 장면이 흔하게 등장한다. 요즘에는 굳이 드라마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수사연구원이 있어 드라마 못지않은 활약을 하고 있다.

이렇게 수사에 도움을 주는 유전자는 DNA라고 불리는 유전물질로 이뤄져 있다. DNA는 약 30억 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의 배열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달라진다. 그런데 30억 개나 되는 염기쌍 중에 유전적인 특질을 결정하는 것은 5%도 안된다고 한다. 이 5%를 엑손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95%를 인트론이라고 부른다. 어떤 과학자들은 이 인트론을 정크DNA라 부르기도 한다. 아무 정보도 없어 쓸모없는 부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결과를 통해 인트론이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위치를 켜면 전등에 불이 들어오듯이 특정 인트론이 켜졌을 때 유전자가 발현되거나 혹은 억제된다는 것이다. 아무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아 무시했던 부분이 실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자들의 끝없는 탐구심으로 쓸모없는 것의 쓸모가 드러나 버린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쓸모없는 것은 바로 버려지는 시대 속에서 사는 우리들. 이런 우리들의 생존과 특질을 결정하는 유전자 속에는 아무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사실 유전적으로 중요한 수행을 하는 부분이었다. 과학자들이 인트론을 쓸모없다고 판단한 것은 무지의 결과일 뿐이었다.

현재 세상을 지배하는 사상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의 목적은 이윤창출이기 때문에 개인도, 가정도, 대학도 이윤을 만들기 위해 달려간다. 모두가 쓸모를 찾아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효율적인 것들은 퇴출당하기 십상이다. 기업은 조금만 비효율적으로 행동해도 금방 경쟁에서 밀려 시장에서 쫓겨난다. 기업만이 아니다. 대학도 이윤을 위해 바쁘게 달려간다. 시장에서 쓸모없다고 판단되는 학문은 통합되거나,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

어떤 것이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주체는 인간이고, 시장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과 시장 모두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이 판단 또한 완벽할 수 없다. 고전주의 경제학에서 인간은 합리적이라 가정하지만, 끝없이 비합리적 행동을 되풀이 하는 것 또한 인간이다. 완전무결하다고 떠받들어지는 시장 또한 종종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다`는 장자의 말처럼 지금 쓸모 있는 것이 쓸모없어질 수도, 쓸모없던 것이 쓸모 있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쓸모를 따지며 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작 우리의 삶을 쓸모없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한번쯤 쓸모없는 것의 쓸모에 대해 생각해 보자.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