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고수들 (7)영국의 경험론 3
모든 학문이 그렇듯 철학 역시 회의주의를 필요로 한다. 그리스 소피스트의 회의는 고대 인문주의를 꽃피웠고, 중세 유명론자의 회의는 스콜라적 말장난에 과감한 메스를 들이댔다. 알다시피 근대 인식론을 탄생시킨 데카르트의 출발점 역시 방법론적 회의였다. 이렇듯 철학적 회의는 지식에 대한 전적인 부정이 아니라 그것의 새로운 확립을 위한 도약대의 역할을 떠맡는다. 아마도 역사상 ‘지독한 회의주의자’로 알려진 한 철학자가 저 유명한 아담 스미스에게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완벽한 지혜와 덕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는 언젠가 BBC에서 전문가 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사상 최고의 철학자’에서 2위(1위는 맑스)를 차지한 적도 있었는데, 바로 오늘 살펴 볼 영국 경험론의 마지막 주자, 데이비드 흄이다.
사실 영국의 경험론은 대륙의 합리론이 구축한 ‘실체’철학을 끊임없이 의심했던 회의론이다. 데카르트가 선험적으로 긍정한 세 가지 실체인 신·물질·정신은 이들의 경험적 사색에 의해 차례로 논박 당했다. 먼저 로크는 혼합된 관념의 산물인 무한실체를 일찌감치 부인한 후 인식 바깥의 대상조차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으로 못 박은 바 있다. 버클리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있다는 로크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사물실체를 아예 인식론적으로 부정해 버렸다. 이제 공은 흄에게 넘겨졌다. 전지전능한 신도, 눈앞에 펼쳐진 온갖 사물도 부정한 마당에, 더 이상 무엇을 회의할 수 있을까? 사유하는 자아가 남아있지만 여기엔 고약한 문제가 남아 있다. 모든 존재론적 실체를 부정할 수는 있어도 인식 자체를 가능케 하는 인식주체, 즉 자아만은 부정할 수 없다는 딜레마. 결국, 또 다시 데카르트가 문제다.
흄 역시 이 점을 모르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방향을 틀어, 생각하는 자아가 앞으로도 같은 자아로 남는지를 캐물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라는 동일한 주체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를 위해 흄은 선배들의 ‘관념’을 세분화 해, 직접적이고 생생한 ‘인상’과 간접적이고 희미한 ‘관념’으로 나눴다. 물론 그의 의도는 자아에 대한 지각도 이런 저런 인상들만 산출할 뿐, 그에 상응하는 관념을 찾을 수 없다는 주장을 정당화하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아란 ‘지각의 다발’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흄은 지식의 전제인 인과성조차 반복된 습관에 불과할 뿐이라며 의심했다. 그의 급진성을 짐작할 만한 독백을 들어보자. “나는 맛난 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며 친구들과 담소를 즐긴다. 그런 뒤 다시 철학적 사색으로 돌아오면 너무나 차갑고 지루하며 우습게 여겨져 더 이상 몰두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는 급진적 회의론이 당사자의 평범한 삶을 결코 방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삶은 계속된다. 하지만 철학은 날벼락을 맞았다. 바야흐로 독단적 이성의 달콤한 꿈이 깨질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신재성(철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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