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이 과학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인, 수은, 안티몬 같은 원소들은 연금술을 통해 발견된 것들이다. 하지만 과학에 기여한 것을 제외하고서라도 연금술은 학문이자 사상으로 독자적인 위상을 차지한다.

“너희들이 바로 신임을 모르느냐?” 신에게 하는 말 치고는 꽤나 무례한 이 말은 기원후 1~3세기경에 살았던 것으로 여겨지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라는 연금술사가 한 것이다. 여기서 너희가 가리키는 것은 바로 보통 인간을 말한다. 연금술에 대한 강한 자부심에서 나온 이 말을 통해 연금술이 이미 인간중심적인 사상을 발전시키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비금속을 금으로 만들 수 있다는 연금술사들의 믿음은 만물이 이어져 있다는 자연에 대한 유연한 사고에서 기인한다. 인간, 특히 연금술사 자신들을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만물을 변환할 수 있다는 그들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아랍지역에서 발전한 연금술은 기술적인 진보와 더불어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했다.

유럽에 연금술이 전해진 것은 12세기 무렵이다. 당시 중세에 해당하는 유럽은 우주와 자연은 신이 창조했다는 창세기적 자연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이 자연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연금술의 사상은 교회를 위협하는 진보적인 생각이었다. 연금술은 금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부합했다. 결국 연금술이 유럽에 유행처럼 퍼지면서 인간중심적인 사상은 자연스럽게 중세인들의 사고에 스며들었다. 이후 유럽에서 나타난 계몽주의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 금 만들기에 물두한 연금술사

그러나 연금술은 진보의 촉매인 동시에 물질에 대한 인류의 욕망의 한 단면이다. 애초에 연금술이 금의 속성이 지닌 본질적인 매력보다는 금이 지닌 경제적 이익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금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높은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감안하면 연금술의 목적이 경제적 이익이라는 점에 수긍이 간다. 하지만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황금만능주의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물질에 대한 추구가 긍정적인 결과만을 낳은 것은 아니다. 연금술에 대해 대중적인 관심이 일자 가짜 금을 만들거나 금을 만들어 준다고 속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부정적인 결과로 오명을 쓰게 된 연금술은 현대에 와서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파울로 코엘료가 쓴 ‘연금술사’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아무렴. 보물을 찾겠다는 마음도 마찬가지야.…… 어쨌든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작가는 만물이 하나라는 연금술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물질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나야한다고 말한다.

즉 금에 대한 허상을 좇기보다는 자아를 실현하기를 바란다고 볼 수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새로운 연금술이 다시금 인간을 계몽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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