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ITAS_베리타스는 ‘지혜 또는 진리’라는 뜻입니다.

늦은 밤, 바빠서 먹지 못한 저녁을 해결하러 24시간 영업하는 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영 대접이 시원치 않다. 주문도 받는 둥 마는 둥이고, 반찬을 가져다주는 손길도 거칠다. 해장국을 식탁에 놓으면서 맛있게 먹으라는 한마디도 없다. 일단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숟가락을 들지만 가슴 한 구석엔 꽁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할 때도 종업원의 성의 없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니 이 식당은 손님을 뭐로 아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식당 밖을 나선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구호와 함께 소비자를 향한 무한 감동 서비스가 시작된 지 오래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고객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고객이 편안하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고객이 더 많은 돈을 쓰게 하기 위해서다.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정말로 ‘왕’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어찌 보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대접이지만 우리는 이런 서비스에 익숙해진지 오래다.

‘왕’대접을 받다보니 진짜 ‘왕’처럼 행동하는 진상 손님들을 보는 일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돈의 힘을 믿고 막무가내로 행동한다. 무시하는 말투와 태도는 기본이고, 사소한 트집을 잡아 종업원을 괴롭히기 일쑤다. 여성 종업원에게는 성희롱도 서슴지 않는다. 돈을 가진 소비자의 힘에 저항하기에는 종업원의 힘은 너무나 미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참을 수밖에 없는, 오히려 더 웃어야 하는 종업원의 감정은 좋을 리가 없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항상 웃는 모습으로 고객을 응대해야하는 사람들을 ‘감정노동자’라 한다. 서비스업종의 종사자들 대부분이 감정노동자이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항상 같은 감정만을 표현해야하니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게 당연하다. 이는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의 `민간 서비스 노동자 삶의 질 연구`를 위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비스직 종사자 3,096명을 대상으로 감정노동 후유증 실태를 조사한 결과 심리상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중등도·고도 우울증 증세가 있는 이들이 26.6%나 됐다. 오랜 시간을 일하며 감정이 상하다보니 가정에서도 온전한 생활을 하기 힘들다.

감정노동자가 세상에 알려진 지는 꽤 됐지만, 아직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좋은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가 커져가는 것에 비례해, 감정노동자의 아픔도 커져갔다. 감정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그들이 받는 고통은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소비자와 공급자의 관계가 갑과 을의 관계, 즉 어느 한쪽이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관계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또한 어느 감정노동자의 말처럼 우리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이라는 생각만 하더라도 그들이 받는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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