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9일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예술계열 대학생들의 집회가 열렸다. 추계예술대학교(이하 추계예대) 등 예술계열 대학들이 취업률로 평가돼 부실대학에 선정된 것을 규탄하기 위해 열린 집회였다. 이날 열린 집회에는 추계예대를 비롯해 동국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집회에서는 퍼포먼스와 시낭송 등의 행사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정책 규탄과 예술인의 환경개선, 부실대학 선정기준 수정 등을 요구했다. 또한 이러한 움직임은 예술인들의 열악한 환경개선을 촉구하는 움직임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예술가도 모두 취직하라는 교과부의 잣대

지난 9월 5일 교육과학기술부는 43개 대학을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17개 대학을 학자금대출 제한대학으로 지정했다. 취업률, 재학생 충원률 등을 기준으로 하위 15% 학교를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선정한 후, 그 중 교육 여건이 열악하다고 평가되는 17개 학교를 학자금 대출대학으로 지정했다.

추계예대는 졸업생 대부분이 자유창작활동에 매진하기 때문에 4대 보험을 보장하는 직장에 취업 여부를 기준으로 둔 이번 평가에서 부실대학에 선정될 수밖에 없었다. 부실대학 선정 직후, 추계예대 학생들은 비상대책위원회의 형태로 ‘뿔난 추계인들’을 조직해 서명운동, 릴레이 1인 시위 등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추계예대 학생들을 비롯해 예술계 학생들은 교과부의 부실대학 선정기준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이다.

추계예대 원유림(추계예대 3) 총학생회장은 교과부의 부실대학 선정에 대해 “예술계열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선정기준이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사전에 지표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학교 경영진에도 문제가 있다”라며 학교 측에도 책임이 있음을 지적했다. 추계예대 총학생회는 부실대학 선정 이후 진행된 총장과 대담을 통해 등록금 10% 인하, 지표관리 개선 등을 약속 받은 상태이다. 추계예대 전체 교수들 또한 지난 9월 8일에 전원사퇴 결의서를 작성해 총장에게 제출하고 학교 홈페이지와 교내에 게시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지난 7월 “모든 대학에게 똑같이 정부 지원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자구 노력이 부족한 대학은 ‘퇴출’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과부는 내년부터 취업률 산정에 현행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로 추산하는 방식 외에 국세청 데이터베이스도 연계해 프리랜서도 취업률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88만원 세대’조차 될 수 없는 학생들

‘뿔난 추계인들’의 회원인 이현정(추계예대 4)씨는 “등록금은 500여 만원 정도지만 재료비까지 포함한다면 사실상 학비는 두 배다”라며 예술계열 학생들은 학비뿐만 아니라 전공에 따른 막대한 부가비용이 발생한다고 털어놨다. 또한 “동생은 국내 최고 수준의 미대를 졸업했지만 연봉은 1500만원이 안 된다. 나는 88만원 세대조차 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1월 29일에는 한예종 출신 작가 고(故) 최고은 씨가 영양부족으로 지병이 악화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돼 예술 환경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한예종 윤상정(한예종 3) 총학생회장은 “현재 예술의 현실은 추계예대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학생들의 참여를 강조했다. 또한 “위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예술인들의 연대 등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예술인들의 생활협회와 예술작품의 제작·보급 등의 역할을 겸하는 ‘젊은 예술가 꼬뮨’을 조직 중에 있다고 밝혔다.


예술대학의 자발적인 변화도 중요해

예술계의 자체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한 소설가 권정현(고려대 문예창작학 박사과정)씨는 “예술을 배우는 학생들은 정부 지원금에 의존할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부실대학 사태와 관련해서는 “공무원들의 행정 편의적인 발상에 비롯된 명백한 오류다”라며 비판했다.

교육과정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미국 뉴욕 소재의 예술대학인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이하 SVA)에 재학 중인 하종수(SVA 4)씨는 “한국의 예술교육은 여전히 일률적인 예술대 입시제도와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며 “창의성을 최우선순위에 두는 예술 교육으로의 변화가 한국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의 경우, 일반 직장인들과 예술계열 종사자들의 대우가 다르지 않다”며 한국사회에서는 예술계 종사자들에 대한 대우와 급여 등이 일반 직장인들에 비해 낮은 것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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