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고수들_11) 근대철학의 통일과 해체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의 말이다. 그런데 해결 자체가 곤란한 문제라면 어떨까? 그것도 피할 수 없는 거라면 말이다. 이렇듯 회피할 수도 그렇다고 즐길 수도 없는 난감한 사태를 일컬어 ‘모순’적 상황이라 부른다. 요즘 사회 곳곳이 이러한 모순적 상황과 갈등으로 어지러운 형국이다.

내몰린 이들과 그들을 직시하고자 모인 이들에 의해 ‘85호 크레인’과 ‘강정 구럼비’는 모순적 상징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바깥은 어떤가? 중동의 봄과 유럽의 여름에 이어 미국의 가을이 연일 화제다. 구호들은 다양하지만 그 시선이 경제적 모순과 정치적 모순의 진원지를 향한다는 점에서 사건들은 하나로 수렴한다. 결국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의 다른 말은 곧 “모순을 점령하라!”이다.

복잡한 현실과 달리 사색은 항상 순수 진리를 추구해 왔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비-진리들을 걷어내야 했기에 불순물과의 접촉은 불가피했다. 철학자들이 주목한 대표적인 비-진리는 바로 ‘모순’이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순율’을 핵심원리로 삼아 제1철학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순의 문제는 이성의 시대에 와서도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을 뿐더러 외려 이성에 기구한 운명을 드리우며 칸트를 좌절케 했다. “인간 이성은 자신의 본성상 부여받았기에 피할 수 없지만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있기에 답할 수 없는 물음들로 괴로워한다.” 그의 독백에 화답한 피히테조차 “최고의 통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닌 우리로부터 산출된 것이어야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자체를 둘러싼 독일 관념론의 난점은 그들이 정작 문제의 핵심에 다가갔음에도 그것을 외면하거나 변죽만 울리는 방식으로 처리했다는 데 있다. 칸트는 인간 이성, 즉 오성이 주체와 객체의 분리를 극복하면 할수록 이율배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반면 피히테는 주체의 운동을 통해 객체를 포섭하고자 했으나 그것은 끝나지 않는 악무한에 불과할 뿐이었다. 통일철학을 외친 셸링의 경우도 직관에 호소해서 주체와 자연을 결합하는 단순한 방법만을 선택했다. 셸링보다 다섯 살 위였지만 불안정한 신분에 머물렀던 헤겔은 ‘애늙은이’라는 별명답게 보다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주객분리가 갖는 모순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어떤 판단을 위해 그 대상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분리가 되었다면 그에 앞서 통일된 상태를 전제해야 하지 않을까? 판단의 어원은 ‘근원적 분리(Ur-teil)’라는 횔덜린의 주장을 이어받아, 헤겔은 주객분리 이전에 존재의 원초적 통일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원초적 상태는 규정되지 않은 단순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분리와 재결합이라는 역동적 운동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해나가야 한다. 인식은 내가 구성하는 것도 대상이 규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을 통해 오류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통일과 분리의 통일”이라는 헤겔의 말은 다분히 모순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어쩌랴! “모든 사물은 그 자체 모순적”이니.

이렇듯 헤겔은 사태의 모순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대립과 갈등을 통해 인식뿐만 아니라 역사 또한 자연적 수준에서 절대적 상태까지 전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원리적으론 풍부했지만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저 운동의 끝은 어디인가? 끝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걸까? 이 문제는 당시 급변하는 사회현실과 맞물리면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시금석으로 간주돼 뜨거운 논쟁을 야기했다. 오늘날까지도.

신재성(철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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