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터 다이어리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는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남장여자 김윤희가 등장한다. 성균관에서 함께 공부하는 이선준은 남장을 한 김윤희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던 내가, 원칙이 아니면 행하지 않던 내가, 예와 법도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던 내가 사내녀석인 네가 좋아졌단 말이다”라는 이선준의 대사에서 유교문화권인 조선시대에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이 그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엿볼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성적 지향을 확실히 지닌 채로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환경이 인간의 선과 악을 결정한다는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처럼 외부적 환경에 의해 스스로의 성적 지향을 정립하게 되는 걸까. 이 문제는 아직 과학적으로도 밝힐 수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현재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성적 지향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이화여대 레즈비언 인권운동모임인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에서 개최한 레즈비언 문화제는 올해로 벌써 9회째를 맞았다. 이대에 재학 중인 한 레즈비언은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동성애에 대한 학내 분위기가 긍정적이라고 얘기했다. 이를 보고 동성애나 양성애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과거에 비해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회에는 아직도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무시하고 심지어는 배척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은 성소수자를 비정상이나 장애인으로 취급하며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번 취재를 계기로 인간의 성적 지향은 어떤 이는 사과를 좋아하고 다른 이는 바나나를 좋아하듯 단순한 취향의 차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소수자라는 단어 자체도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이성애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지, 그들을 차별하려 붙여진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는 이성애가 우월하기 때문에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를 ‘인정해 준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레 자신들을 받아들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성소수자들이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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