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학거부선언이 1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 13일 서울대학교 재학생인 유윤종(23)씨는 학생회관 등 4곳에 ‘저번 주에 자퇴서를 냈는데’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그는 대자보를 통해 “대학을 그만두는 이유는 대학서열체제와 입시경쟁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다”라며 자퇴 이유를 밝혔다.
또한 그는 대학을 가지 않기로 결심한 고3 수험생들, 20대 이상의 사람들과 함께 대학입시거부선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후,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하는 한 단체의 캠페인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단체는 바로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하 투명가방끈)’이다.

경쟁과 학벌사회에 돌을 던지다

투명가방끈은 더 높은 점수와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지위를 향해 끊임없이 달리라고 요구하는 사회에 의문을 제기한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교육이 제 가치를 잃어버리고, 경쟁시키는 것 자체가 교육의 목적이 됐다고 비판한다. 또한 이들은 모든 사람들이 대학을 가야 한다는 편견과 강요에 반대하며, 대학은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는 하나의 선택지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학벌을 상징하는 가방끈을 비꼬는 ‘투명가방끈’은 좋은 대학만이 배움의 장소가 아니라는 그들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이들 단체가 결성된 것은 올해 8월 말이다. 평소 청소년인권운동을 해오던 93년생 활동가들이 모여 투명가방끈을 조직했다. 현재는 유윤종 씨를 포함한 20대 활동가 5명이 참가해, 10명 정도의 회원들이 투명가방끈을 이끌어가고 있다. 현재 투명가방끈의 공식 카페 회원 수는 290여명 정도다.

투명가방끈을 조직한 회원 중 한 사람인 따이루(활동명, 19)씨는 “최근 유윤종 씨가 자퇴를 선언한 뒤 투명가방끈의 대학입시거부가 많은 화제가 됐다. 투명가방끈의 입장에 공감하며 지지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수험생들을 괜히 선동하지 말라는 비난도 있다”고 말했다. 왜 굳이 많은 활동 중에 대학입시거부냐는 질문에 그는 “거부라는 행동 자체가 ‘하지 않겠다, 이건 잘못됐다’라고 버티는 것이다. 이런 식의 활동들이 학벌사회, 경쟁교육, 불안정한 사회, 불행한 오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입시좀비, 스펙좀비의 홍대거리 행진

지난달 31일, 홍대 걷고싶은 거리에서 ‘입시좀비 스펙좀비 할로윈행진’이라는 투명가방끈의 행사가 열렸다. 행사는 입시와 스펙만을 쫓다가 좀비가 되어버린 학생들, 학생들을 위협하는 경쟁, 차별, 등록금, 학벌 등의 저승사자들의 행진이라는 설정으로 이뤄졌다. 좀비와 저승사자로 분장한 학생들은 홍대 거리를 활보하며 ‘학벌사회 반대한다’, ‘경쟁교육 중단하라’, ‘등록금은 너나내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행진에는 투명가방끈 회원을 비롯해 아수나로 청소년인권단체 회원, 고등학생, 시민활동가 등 40여명이 참가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이잔반(활동명, 19)씨는 “작년에 고등학교를 자퇴했는데, 사람들이 고등학교 졸업장, 대학 졸업장 없이 어떻게 살겠냐고 많이들 따졌다”며 “대학에 가지 않는 인생도 다양한 인생 중 하나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투명가방끈은 지난 1일 청계광장에 모여 20대 청년들의 ‘대학거부선언’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오는 10일에는 19살 수험생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을, 11월 12일에는 청계광장에서 대규모 거리 행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 10월 31일 홍대에서 열린 ‘입시좀비 스펙좀비 할로윈 행진’에 참가한 한 학생이 피켓을 들고 있다.

소수자의 의견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어

투명가방끈의 대학거부선언에 우려를 보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대학입시거부선언의 규모 자체가 아직은 소규모인데다가,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도 큰 공감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청년세대의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에서 10대 팀장을 맡고 있는 김병철(19)씨는 “현재 대학거부선언은 주로 청소년인권단체에서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과연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의 의견을 모두 대변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라며 “좀 더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운동이 되어야 하는데 너무 고립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시사회학과 이윤석 교수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대학입시거부선언에 대해 “개인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학교나 학벌로 개인의 특성을 재단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발작용으로 보인다. 이는 학교나 배경으로 자신을 평가하지 말고 자기를 제대로 알아달라는 목소리다”라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 대학의 변화 방향에 대한 질문에 그는 “대학이 국민 대다수의 목표가 되어버린 지금, 대학이 당장 큰 변화를 도모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며 “하지만 대학이 똑같은 학생을 찍어내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수능과 내신만이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려는 대학 본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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