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보도의 덫]

우리나라에서는 선거일의 일정기간 전부터 일체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수 없다. 현행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하 선거법)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법 108조에서는 ‘누구든지 선거일 전 6일부터 선거일의 투표마감시각까지 선거에 관하여 정당에 대한 지지도나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의 경위와 그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하여 보도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법안에 대해 선거정보에 대한 언론의 접근을 제한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선거기간 동안의 여론조사 결과공표를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이유는 조사 결과가 보도될 경우 유권자 투표 의사에 영향을 미쳐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 보도가 유권자들의 투표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도의 어나운스먼트 효과’라고 정의한다. 어나운스먼트 효과의 종류에는 밴드웨건 효과, 언더독 효과, 브래들리 효과 등이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밴드웨건 효과
밴드웨건 효과는‘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처럼 특정한 선택이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정보에 영향을 받아 그 선택에 합류하게 되는 효과를 말한다. 밴드웨건은 ‘악대차’라는 뜻으로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에 마을에 서커스가 들어오면 악대를 앞세워 행진을 하게 되는데, 이때 맨 앞에서 악대를 이끌고 가는 차나 마차를 의미한다. 밴드웨건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그 뒤를 줄줄이 따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빗대어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현상을 밴드웨건 효과라고 하게 됐다.

감정에 호소해 설득한다-언더독 효과
밴드웨건 효과와는 정반대로 언더독 효과는 절대강자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약자에게 연민을 느껴 약자를 지지하게 되는 효과를 말한다. 이는 여론조사결과 특정후보의 지지율이 낮을 때 유권자들이 연민을 느껴 적극적인 지지층으로 변하는 것을 설명한다. 개싸움에서 유래된 언더독 효과는 싸움에서 지고 있어 밑에 깔린 개(underdog)가 이기기를 바라는 것에서 비롯됐다. 선거기간에 눈물을 보이는 것처럼 사람들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은 언더독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심을 숨기다-브래들리 효과
브래들리 효과는 인종과 관련돼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우세했던 유색인종 후보가 실제 선거에서 득표율이 낮게 나오는 경우에 브래들리 효과가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브래들리 효과는 실제 인물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당시 민주당의 흑인 후보였던 토머스 브래들리와 공화당의 백인 후보인 조지 듀크미지언이 경쟁구도에 있었다. 흑인이었던 브래들리는 선거 전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더 높은 지지율을 얻은 것은 물론, 선거날의 출구조사에서도 듀크미지언에 앞섰다. 그러나 개표 결과 브래들리는 듀크미지언에게 패배했다. 이후에도 83년 시카고 시장선거와 89년 뉴욕 시장선거,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이와 비슷한 브래들리 효과가 나타났다.

이 사건을 분석한 결과 일부 백인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원에게 백인을 지지한다고 응답하면 자신을 인종적 편견을 가진 사람으로 간주할까봐 실제로는 백인 후보를 지지하는데도 불구하고 유색인종을 지지한다고 응답했음이 밝혀졌다. 이와같이 브래들리 효과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주지 않기 위해 실제로 지지하는 후보를 감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2000년대 이후에 인종과 관련된 편견이 줄어들었고 여론조사 기법도 발달해 더 이상 브래들리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버드대 대니얼 홉킨스 정치학 교수는 1989년에서 2006년에 있었던 133개의 주지사, 상원의원 선거를 분석했다. 이 분석 작업을 통해 내린 결론은 90년대 중반까지 브래들리 효과가 흑인 후보에게 2~3% 정도 손실을 끼쳤지만 그 이후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앞서 브래들리 효과가 대선에서 재연될 가능성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지만 승리는 오바마 후보에게 돌아갔다.

밴드웨건 효과나 언더독 효과도 개념적으로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어나운스먼트 효과이긴 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다. 여론조사와 선거결과를 비교해 보면 밴드웨건이나 언더독 효과로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어나운스먼트 효과가 강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현대사회에서는 어나운스먼트의 효과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설이 정설이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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