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고수들 - (12)근대철학의 통일과 해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선거가 끝나고, 승패의 갈림 속에 희비가 엇갈렸다. 그런데도 불편한 감정을 떨칠 수 없는 건 왜일까? 누군가는 ‘정책실종, 비방난무’를 원인으로 꼽지만, 식상한 양비론적 훈수는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왜냐면 자질 검증이란 미명하에 네거티브 전략을 선거 프레임으로 구축한 ‘특정’ 진영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기 때문이다. 다행인 건 이러한 꼼수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 일시적 반등에 흥분한 이들이 던진 낡은 프레임의 칼날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고 그들은 냉혹한 결과에 직면해야 했다. 다시 변화와 혁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참에 당명도 다시 개정하잔다. 하지만 겉모습만 바꾼다고 실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성은 반성과 성찰에서 드러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사실 경쟁 속에 선다면,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 못지 않게 상대를 깎아내리고자 하는 욕망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정치야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저 고상한 철학의 영역조차 이러한 욕망에 휩싸이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와 관련해 쇼펜하우어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인물에 해당한다. 그의 주적은 헤겔이었다. 베를린대학 강사 시절, 잘나가는 노교수를 깎아내리기 위해 그가 구사한 전형적인 네거티브 발언을 들어보자. “권력에 힘입어 높은 자리에 오른 헤겔은 위대한 철학자로 공인되었으나, 실은 어리석고 고루하며 구역질나고 무식한 돌팔이인데다, 터무니없고 알쏭달쏭하며 무의미한 글을 휘갈겨 쓴 뒤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비난은 자신에 대한 비참으로 돌아왔다. 헤겔과의 정면대결을 위해 같은 시간대로 맞춘 그의 강의는 잘못 찾아온 학생을 포함한 소수의 참석률로 인해 폐강되는 운명을 맞았기 때문이다. 만약 철학자의 실력을 투표행위로 결정한다면 쇼펜하우어는 완패의 고배를 마신 셈이다. 하지만 철학의 운명은 질적인 평가로 판단되는 법. 비록 대가의 반열에 오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가 남긴 사색의 흔적들은 당대의 철학에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염세주의’로 알려진 그의 철학은 낙관론과 진보관이 판치던 열광의 도가니에 끼얹은 찬물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 정점에 헤겔이 있다고 본 쇼펜하우어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다시 칸트로! 다시 플라톤으로!

이데아를 보기 위해 동굴 밖을 힘겹게 올랐던 플라톤이 남긴 유산은 현상계 너머의 본질에 대한 추구다. 그런데 근대의 왕으로 군림하던 이성은 애석하게도 칸트에 의해 월권을 제약 당한 불구적 존재가 된지 오래다. 따라서 새로운 탐험 도구가 필요하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이것이 ‘의지’이다. 의지는 우선 나의 의지다. 다시 말해 나는 이성적 판단에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집착과 같은 근원적 의지에 의해 추동된다. 그런데 의지는 엄밀히 말해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상 배후에서 삶을 조종하는, 맹목적이고 공허하며 무자비한 ‘물자체’ 같은 존재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순탄할 리 없다. “삶이란 죽음으로부터 받은 대출로 여겨야 한다. 그 대출의 일일 이자로 우리는 날마다 잠을 자는 것이다!”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자칭 ‘합리적 비관주의자’ 쇼펜하우어에게 탈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라. 삶이 의지의 소산이라면 죽음 역시 끝일 수 없다. 해체는 새로운 재구성인바, 이것이 바로 ‘윤회’적 삶인 것이다! 하지만 보다 단기적인 처방을 원한다면 예술에 심취해볼 것을 쇼펜하우어는 권장한다. 그 중에서도 음악이야말로 마치 구름 사이로 비추는 햇살처럼, 고통을 잊게 해주는 순간의 환희이기 때문이다. 이런 처방이 본인에게는 약이 된 걸까? 그는 72세까지 장수를 누리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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